한국일보

달이 차면 기울어지듯이

2011-12-0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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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부순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하늘은 맑은데, 비가 흩뿌리고 있다.
맑은 중에 내리는 이 비는 물방울이 아니다.
여름은 이미 흘러 졌고,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나무가 나뭇잎을 떠나보내면서 흘리는 눈물이다.
마치 비가 뿌리는 듯하며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이 광경을 보자니 가슴에 눌려있던 슬픔 따위가 날라 가는 것 같아서 시원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어떤 아쉬움으로 가슴이 답답하니 무거워진다.
요즘의 나는 더불어 생긴 두 개의 감흥으로 종종 혼란스러워 한다.
그건 혹시 늙어진 탓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생긴 현상은 아닌지 모르겠다. 외양은 굳세게 젊음을 지키려 해도, 세월 따라 노쇠 현상을 보이는 마음 때문에 말이다.
세상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새롭게 생겨질 것들을 위한 묵은 것들의 희생. 가득하니 열려진 만월은 새롭게 열려지는 초승달을 위하여 자신의 모습을 죽인다.
지금 마치 비가 내리는 듯이 떨어지는 저 완성된 이파리들은 새롭게 피어날 새 순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흙 속에 묻힌다. 슬픔을 황홀한 빛깔로 감추면서 말이다. 충만하게 자신의 모습을 채우고는 사그라지는 저 달과 같이 말이다. 아직까지는 자아를 내세워 씩씩하게 지내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지식보다는 주위에 자리한 지혜를 깨달으며 지내려고 한다.
조금은 고개 숙여 힘을 잃은 자아에게서 지금의 내 나이가 깨달아진 거다.
내가 불교에서 설파하는 ‘윤회설’의 말처럼 새롭게 태어난다 치자. 새롭게 태어난 나는, 이전의 나를 기억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나란 그저,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사라진 한 유성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자연 만물을 바라보는 나는 그것들의 변화를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봄이 되면 새롭게 생겨나서는 자연법칙에 따라 죽어야 하는 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잎들은 과연 그 사실을 알까?
나는 특별한 존재도 아닌데, 나란 존재는 별 수 없이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사실에 반감이, 하여간 싫었었다. 그 덕분에 남과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된 영광을 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무에서 떨어져야만 하는 잎들을 보자니, 이제는 서서히 나도 인생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할 시간이 느껴진다.
그 덕분에 달도 차면 기울어져야 하고, 활짝 봉오리를 열었던 꽃은 져야 한다는 자연의 진리 같은 게 깨달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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