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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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전설, ‘품바’

2011-11-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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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저녁, ‘품바’ 공연을 관람했다. 홍보가 덜된 탓인지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품바 30년 최고의 단짝이라는 7대 품바 김기창 씨와 2대 고수 김태형 씨가 호흡을 맞추어 열정을 다해 보여준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관객을 웃고 울리면서 숨 돌릴 틈 없이 계속된 공연은 1시간 40분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막을 내렸다.

품바는 전라남도 무안지방에서 살았던 거지 대장 천장근을 소재로 한 마당극 형태의 연극이다. 주인공 천장근은 목포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다가 일본으로 실려 가는 공출미에 격분해 파업을 일으키고 수배를 받던 중 피신하여 거지가 된 사람이다.

그는 걸인 100여명을 모아 천사회를 조직하고 스스로 대장이 되었다. 민폐를 끼치는 자는 엄하게 다스리는 등 걸인으로서의 규율을 세웠다. 6.25때는 좌익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인을 잃었다. 그의 치열한 저항정신과 격동기를 살아온 민초들의 애환을 극으로 승화시킨 것이 품바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무안지방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실제로 거지들을 치료하고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어른을 이곳 미국에서 뵌 적이 있다. 그 분으로부터 거지 대장 천장근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품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품바가 처음 시작된 것은 외지에 나가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와 천장근을 소재로 한 연극을 만들어 공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수준의 엉성한 연극이었다.

최시라가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아 제대로 된 극이 되었고, 1981년 무안군 일로읍 공회당에서 첫 공연 되었다. 이 연극이 지방에서 인기를 끌면서 서울에 알려지게 되었다. 서울로부터 초청을 받아 공연을 했는데 공전의 히트를 쳤다.
1981년부터 시작된 품바 공연은 오늘까지 5,000회 이상이 되여 200만이 넘는 관객이 관람을 했다. 1996년에는 최초 최다 공연, 최대 관객동원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품바 거지와 고수 두 사람이 이끌어가는 이 극은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 차있다. 1인 14역을 맡은 각설이의 걸쭉한 입담과 타령, 고수의 신명나는 장단, 관객을 참여시키는 마당극 형식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을 잊고 연극에 빨려들게 한다.

아내가 죽었을 때 “하나님, 당신이 필요해서 데려가셨겠지만, 내게는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 울부짖는 광경, “느그들이 거지를 멸시해! 그러면 못써. 거지들 때문에 느그들이 우쭐댈 수 있고, 거지들이 있어 느그들이 목에 힘을 주고 사는거여” 하는 대목, “세상에서 제일 빠른 것은 배고파 오는 시간이고, 제일 아름다운 것은 배고픈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이라는 대사는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연극의 내용도 훌륭했지만 내가 이번 공연을 보면서 감동한 진정한 이유는 그들의 직업정신이었다. 몇 사람 되지 않는 관객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최선을 다해 열연하던 그들의 모습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온 힘을 다 해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흔든다.

품바공연이 그렇게 오랫동안, 그토록 많은 관객을 모으는 것은 연기자들의 장인정신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찬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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