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 전어

2011-11-1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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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주 워싱턴 문인회

가을 전어(錢魚)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으며 또 가을 전어 머리엔 깨가 서 말이란 말도 있다.
“고추 당추 맵다해도 시집살이 더 매워라/ 무정스런 세월가면 이 신세 나아질까?/ 이 내 몸이 죽어져야 이 고생을 면할 건가?/ 그러고도 남는 고생 저승까지 가려는가?/ 어찌하여 인생길이 이다지도 고단한가?” 시집살이가 오죽 맵고 힘들었으면 도망갔을까? 독한 맘먹고 도망갔던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에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온다는 정도이니 가히 전어의 위력(?)을 가늠할 만하다.
나는 지금도 가을 전어 철이 되면 전어 요리에 매혹되어 자주 먹는 편이다. 참 오래 된 일이다. 전어와 인연을 맺은 게 거의 60년 가까이 된다. 중·고등학교에 가을 추수의 계절이 오면 추계 가정실습기간이 있다. 1주일간 수업을 전폐하고 학생들이 가정에서 가을 농사일을 돕는다. 이것은 학사 연례행사이다.
이 때면 교사들도 조금은 여가를 가질 수 있으며, 연구 교안도 작성하며 여유 있는 시간을 선용하는 기간이다. 내가 서부 경남의 K농업고등학교 재직 시절, 그 해의 가정실습기간에 동료교사 친지의 초청으로 남해도(南海島)에 갔다. 남해도는 우리나라 섬 중에 네 번째로 큰 섬이며 행정구역으론 남해군이다. 남해군은 많은 고적과 역사가 있고 고찰과 관광명소들을 두루 갖춘 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모처럼의 황금기를 5명의 교사가 가을 여행으로 간단한 등산장비에 배편으로 대한해협의 한려수도의 푸른 창해를 시원히 가르며 목적지 김해읍에 도착했다. 첫 날 여장도 채 풀기 전에 일행은 용문사를 거쳐 흔들바위 쌍홍문 등을 서둘러 등산하고 돌아왔다.
집집마다 저녁 연기 지붕을 덮고 땅거미 어둠을 몰고 오는 저녁때 출출한 시장끼를 안고 대문에 채 들어서기 전에 낮은 담장이 너머로 전어를 굽는 냄새가 콧구멍을 막으며 배 속의 회를 요동케 했다. 우리는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차려 놓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식탁 옆 뻘건 숯불화로에는 연방 집 주인 내외가 전어 굽기에 바빴다. 바다에서 갓 잡은 전어는 은빛이 돌면서도 은은한 비취색을 띄며 불그스레하면서도 지방으로 속살 기름이 번지르르해 보였다. 석쇠 위의 전어 몸통에서 떨어지는 기름이 불에 떨어지며 뿜어내는 냄새, 또 그 타는 연기마저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 청, 미각을 동원하기에 부족한 것 같지 않았다.
거기에다 집에서 담가 걸은 찹쌀 동동주를 곁들여 노랗게 구운 전어 머리를 와작와작 깨무는 그 맛! 조금 전에 등산에서 느낀 피로를 한 방에 싹 가시게 했다. 그뿐 아니다. 칼 길을 눕혀 쫀쫀히 썰어서 상추 등 푸성귀를 깔개로 넓은 접시에 가지런히 놓은 회(膾), 푸성귀에 쫄깃쫄깃한 전어 살점을 듬뿍 얹고 고추 마늘 막장에 싸서 볼이 메이도록 우겨 넣는 그 맛! 그리고 뼈 채로 가루되도록 다진 뼈 회(세꼬시)를 겨자에 찍어서 눈물을 떨구며 먹는 그 맛! 이 또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식도락이라 할 수 있겠다.
전어는 아무래도 가을철의 전어가 일품이다. 그래서 전어를 전어(錢魚)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전어를 또 다른 말로 전어(箭魚)라고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전어(錢魚)가 더 친근감이 든다.
이 때 먹어 본 전어 맛에 전어를 좋아하게 됐으며 지금도 전어 철이면 자주 전어를 찾는다. 정말 전어 머리엔 깨가 서 말이며 전어 굽는 냄새에 집을 나갔던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전언에 실감하며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전어 구이와 야들야들 전어 회에 군침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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