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교육칼럼/ 자폐아 양육기 ⑩아이 자랑하기

2011-11-07 (월)
크게 작게
변성희(뉴욕한미교육회 회장·뉴커머스고교 교사)

에반이가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조차 요즘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다니는 터라 주변에서도 스스럼없이 에반이가 요즘 어떠냐고 물어보고는 한다. 예전 같아서는 ‘아직까지도 친구들이랑 놀려고 하질 않아요’ 라던가 ‘여전히 반복행동이 많네요’ 했던 나였는데 요즘 들어서 나의 대답은 ‘에반이가 눈 맞춤이 상당히 좋아요’ ‘이제 저보고 엄마라고 하면서 거뜬히 한문 장을 만들기까지 합니다’라고 바꾸어져 있다.

내년에 의젓한 5세가 되는 에반이는 해가 지나갈수록 일반 아이들과의 차이가 확연히 들어나고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이제 제법 돌처럼 단단하게 단련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지만 나도 에반이를 다른 일반 엄마들처럼 자랑하고 내보이고 싶은 마음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발달장애아를 두지 않은 부모들에게는 에반이의 더디지만 꾸준한 발전이 참 미세하기 때문에 아이를 자랑하고 싶어 하는 팔불출 엄마로서 무슨 자랑을 해야 할 지 조금은 난감하기
마련이다.


영재(Gifted and Talented) 학교에 보내려고 벌써부터 치열하게 유치원 경쟁 준비에 열을 올리는 부모들에게 아이의 자랑거리는 끝도 없다. 발표력이 너무 좋다, 책을 거침없이 술술 읽는다, 반에서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다 등. 그런 이들에게 에반이가 사진 찍을 때 이제 제법 카메라를 응시하게 되었다고 흥분하면서 자랑을 하자니 같은 격이 될 수가 없다 . 에반이와 같은 발달장애아들은 일반 아이들과 같이 발달의 폭이 넓지 않지만 그들의 패턴에 맞추어 꾸준한 발달을 이뤄나간다. 그렇기에 말 한마디 더 하는 것, 눈 맞춤 한 번 더 하는 것에도 부모들에게는 큰 웃음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에반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변명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에반이 스스로의 작은 발달을 진정으로 뿌듯해하면서 자랑하는 엄마로 성장한 듯하다.

일전에 한 지인이 에반이의 장래에 대한 내 생각을 물은 적이 있다. 내가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을 해서일까? 나는 ‘에반이는 결국 시설로 가게 되겠지요’ 하니까 그분은 ‘왜 아이를 포기하세요?’라고 되물었다. 아무리 내가 모든 발달장애인들이 다 마라톤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다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이 아니고, 다 수영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해도 그분은 계속해서 아이를 포기하지 말라며 질책했다. 그렇게 특별한 한 가지 재능만을 믿고 그것만이 발달장애인의 자랑이라고 생각하는 그분의 생각이 한동안 필자를 괴롭혔었다.

에반이의 가능성은 나도 모른다. 비장애아이들의 가능성이 끝이 없는 것처럼 에반이의 잠재력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튀어 나올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훗날 20세의 에반이가 멋지게 대학공부를 마칠 수도 있을 것이고, 30세의 에반이가 꾸준히 다닐 직장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40세가 될 아저씨 에반이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목청 돋우어 부르기를 즐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성을 제대로 배워나가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에반이가 절대적으로 독립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 순간 에반이가 먼 훗날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에서 자신의 마지막 인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절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장애로 인해 미묘한 사람들의 관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계속해서 도전해나가는 에반이가 엄마로서 대견하고 참 자랑스러울 뿐이다. 자신의 장애에 대한 에반이의 외롭지만 끊임없는 도전, 일반인도 같이 자랑스러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에반이 파이팅!’을 외쳐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