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

2011-11-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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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어느 날 그에게서 문득 전화가 걸려 왔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의식이 몽롱하던 순간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 데 나의 전화번호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단다. 친구는 무의식 속에서도 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았다.

그의 병명은 췌장암이었다. 투병생활을 하느라 1년 반 동안 갖은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살아있어 다행이더니, 얼마 전 친구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들은 지 이틀 후 그 친구로 부터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편지 내용은 자신이 앓고 있는 동안 자기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살아갈 수 있게 힘을 주어서 행복했고 고마웠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읽으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친구에게 별로 해준 게 없었다. 기껏해야 내가 매달 남편으로부터 받는 용돈의 십분의 일쯤을 나누어 쓴 것뿐이었다. 액수로 치면 콩나물값에 지나지 않는 적은 것이지만, 친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는 편지에서 친구는 “우리 가끔 교회에서 만나자”고 했다. 장례식이 아직 이틀 남아 있던 그때 친구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한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편지를 쥔 손끝이 바들바들 떨려 옴을 느끼며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썼다. 삶과 죽음 사이의 벽이 아주 얇게 느껴졌다. 하늘나라에서 날아온 편지일까? 이 친구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닐까? 잠깐 충격과 함께 엉뚱한 상상이 머리를 스쳐갔다.

나중에 들어 보니 친구는 죽기 이틀 전에 편지를 써서 그의 아들에게 편지를 띄우도록 부탁했었다고 한다. 친구는 성격이 깔끔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온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죽음을 앞두고 친구인 내게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았다.

그 마음을 편지를 남김으로써 내게 전한 것으로 보여진다. 항상 반듯한 삶을 살아온 친구를 잃은 슬픔이 뼈를 저리게 했다. 그리고 내가 너무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주위에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나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받고 있다. 그 사랑에 나는 과연 무엇으로 보답하며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친구의 편지를 다시 보며 아름다운 신앙인의 자세를 되새긴다. 목소리 높여 말로 ‘복음’을 외치기보다는 조용히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른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사심 없이 신앙인다운 모습을 보여 줄 때, 비로소 보는 이들이 스스로 감명을 받게 되고 참뜻이 전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가을에 친구가 마지막으로 보내준, 하늘나라에서 날아온 편지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에바 오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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