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지와 대통령’

2011-10-31 (월)
크게 작게
민지는 아주 영리하고 성실한 아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매해 여 름 유권자센터의 인턴프로그램에 단골로 참가한다. 유권자등록 캠 페인을 하고, 한인유권자 명부를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고, 투표참 여 캠페인을 벌인다.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할 때, 독도 명칭 변경을 저지할 때, 한미 FTA 의회비준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일 때는 유권자센터 스탭들 과 워싱턴의 의사당을 방문해서 한인들의 의견을 연방의원들에게 아주 용감하게 전달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민지는 아주 열심히 공부해서 3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지난여름 민지가 필자에게 심각하게 부탁을 했다. 1년 동안 워싱 턴을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민지를 주미 한국대사관의 경제 과에 추천했다. 연방의회를 직접 경험한 민지가 대사관의 경제과에 서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대사관의 대사를 비롯한 고위 외교관 들이 민지의 실력과 성실함을 칭찬해 온다. 더구나 민지의 당당함 을 강조하면서 유권자센터의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워싱턴을 국빈 방문했다. 대사관은 민지를 이명박 대통령의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의 주방에 3박4일 파견했다. 대통령을 따라온 청와대 주방장의 통역이 민지의 역할이었다.

주방장은 민지로부터 미국을, 그리고 미국 내의 한인들에 관해서 상세하게 듣고 알게 되었다. 특히 한인들의 정치적인 활동에 대해 서 주방장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한미 FTA를 위해서 자신이 연방 의회를 드나들면서 의원들을 직접 만났던 일도 설명했다.

민지의 설명은 주방장을 통해서 대통령 부인에게, 그리고 부인을 통해서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영부인은 대통령께 ‘가장 똑똑한 한인학생’을 꼭 만나시라고 권유했고, 대통령은 블레어하우 스를 떠나는 길에 민지를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주방장으로부터 대통령과의 만남을 전해들은 민지는“ 설마...” 했 다. 대통령이 블레어하우스를 떠나는 그 시간에 주방을 청소하느라 민지는 눈 돌릴 틈도 없었다. 보통 국빈이 떠나는 동시에 블레어하 우스를 백악관에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대사관의 입장에선 청소 가 급한 일이었다.

대통령은 블레어하우스에 집결한 대사관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 하고 인사를 나눈 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1분, 2분을 기다 렸다. 한덕수 대사가 대통령께 무슨 일인가를 물었다.“ 동포학생 한 명이 나를 여기서 만나자고 했는데 나를 기다리게 한다”는 대답이 었다. 대사, 경호원, 의전담당 모두가 당황했다. 대사관 직원들이 민 지를 데리고 대통령 앞에 왔다.

“얼마나 똑똑한 학생이기에 내가 5분을 기다려서 만나야 하는 가? 나도 참 바쁜 사람인데 5분씩이나 기다리게 했느냐?” 청소를 하다가 달려 나온 민지를 대통령이 덥석 끌어안았다.


한인들이 한국을 위하는 일에 그렇게 애쓰고 있는 줄을 너를 통 해서 다 들었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당황하고 너무나 감격해서 민지는 그만 울고 말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FTA 법안 서명식에 초청을 받아서 워싱턴에 갔었다. 대사관 직원들로부터 국빈방문 중에 있었던‘ 민지와 대통령’ 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김동석/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