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월 따라 닮는 친구들

2011-10-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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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란
수필가

지난 달 오랜만에 뉴욕을 다녀왔다. 남편의 고향 친구들 은 캐나다의 토론토, 밴쿠버, 뉴욕 그리고 워싱턴에 흩어져 살아서 1~2년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집을 방문해 만난다. 충청도 공주가 고향으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 은 학교를 다녔다는 그들은 마치 한 형제 같다. 그렇게 많이 만났어도 반가워하는 모습이 마치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생 존자를 찾은 사람들처럼 서로 얼싸안고 떨어질 줄 모른다. 아내들도 어느새 세월 따라 가까워지고, 또 충청도 이야기 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반쯤은 충청도 사람이 다 됐다.

원래 살아있는 생명이란 자신이 그리운 쪽으로 눈길을 주 고 몸을 돌려 아로새기다 보면 서로 닮아 가는 법.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서서히 닮아가는 것일까. 세월 따라 아내와 남편들도 닮아가고 친구들도 닮아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잊고 있었던 정도 다시 만나면 샘솟듯 솟구친다. 뉴욕에 가까이 가니 어느새 차들은 빽빽이 밀리기 시작 하고 내 혈관속의 빨간 피들이 몇 배는 더 빨리 곤두박질치 는 느낌이다.


2층으로 된 조지 워싱턴 다리는 바닥에 깔린 쇠판 때문인지 아래위 철판 소리가 덜커덩 덜커덩 금세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거기다 우리가 탄 차 뒤 쪽에서 사고가 났는지 차 대여섯 대가 부딪히는 소리가 쾅 쾅 쾅 들리더니 사람들 외치는 소 리와 경적 소리도 들린다.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과 함께 긴 장과 공포가 몰려온다. 롱아일랜드 바닷가에 있는 친구 집은 뒤뜰이 해변이고 수 영장도 갖춘 예쁜 집이다. 바다를 향한 쪽은 유리창이라서 집안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우리 침 실 창가의 바다에 해가 떠오르고 돛단배 두 척이 유유히 지 난다. 우리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낚시도 하고 또 맑은 물 에서 조개와 멸치도 잡았다. 남편들은 그 옛날 금강에서 미 역 감던 이야기와 그 위험한 다리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던 추억들을 얘기한다.

그들은 모두 외아들들인데 어머니들이 아셨으면 얼마나 난리가 나셨을까 한다. 그리고 그때는 왜 그리도 하지 말라 는 짓은 모두 골라서 했는지, 어찌 그렇게 어머니 말을 안 들 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죄송하다며 시무룩한 얼굴을 한다. 유소년기를 함께 보낸 그들은 황금빛 논둑에서 노래자랑 을 하고 밤이 되면 과수원에 참외 서리를 갔었다. 강으로 산 으로 함께 몰려다니다 보면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그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함께 다녔다고 한다. 한 번씩 그렇게 만나면 그들은 이민생활로 스트레스 가득 한 각자의 마음속에 신비로운 에너지를 잔뜩 충전하는 듯 하다. 이렇게 모였다 돌아가는 길은 한결 가벼운 발길로 즐 거움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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