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이 위에 쓰는 편지

2011-10-15 (토)
크게 작게
가을이 오면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지며, 따뜻하고 다정한 사연을 담아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진다. 현대는 흔히 편지가 죽어버린 시대라고들 한다. 이메일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웍이 우리생활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번개처럼 날아가는 이메일로 편지를 대신하는 시대다보니 편지글을 종이에 쓰는 일은 일상에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며 쓴 편지를 들고 우체통으로 향하던 낭만은 옛 일이 되었고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의 하나가 육필로 쓴 편지이다.

편지는 받으면 우선 반갑다. 느낌만으로도 보낸 이와 대화가 시작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막상 읽고 나면 제한된 지면에서 오는 아쉬움, 마주앉아 오래 오래 나누는 이야기만큼 흡족하지 않은 허전함이 안겨 오긴 하나 편지를 쓰면서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었을 시간의 소중함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쓰기에 따라서 읽는 사람의 영혼 까지도 쓸어안는 농밀한 편지가 될 수도 있다. 훈훈한 정에 끌려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님을 절감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밤을 새워서 편지를 쓸 수 있으며 받은 편지를 소중히 간직한다.

편지는 그리움이며 외로운 영혼의 언어 전달이다. 그립고 보고 싶은데, 쉽게 만날 수 없으니 더욱 더 애타는 그리움을 전하는 편지를 밤이 깊도록 쓴다. 그렇게 편지는 나만의 아름다운 비밀이며 외로운 밤의 서정시이며 편지를 받는 대상과 단 둘이 나누는 사랑의 신비한 호흡이다.

편지는 하나의 비밀 결사를 맺는 것이라고 시인 정현종은 말 했는데, 바로 그 외로움 때문에 우표는 바다를 건너 산맥을 넘어 오늘도 우리의 하늘 위로 마치 손짓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유치환 ‘행복’ 중에서>

머잖아 가을이 밀려나고 겨울이 성큼 닥아 오면 더 세상은 적막하고 쓸쓸해지리라. 가을이 가기 전에, 나는 종이 위에 쓴 감미롭고, 인간애의 향기가 풍겨나는 한 통의 편지를 읽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사랑의 편지를 써야 하리라. 고요한 가을밤에 쓰는 사랑의 편지, 참으로 운치 있는 일일 것이며. 잊혀 진 추억을 되살려 향수에 젖어보는 순간이 될 것이다.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는 문구가 들어있는 종이 위에 쓴 육필 편지를 손에 들고 코스모스 피어있는 집을 지나 우체통으로 향하는 행복을 이 가을에 맛 볼 것이다.


김영중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