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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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업/ 맨하탄 비콘 스쿨 12학년 마 린

2011-10-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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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팝은 자부심이자 열정이죠

대학 진학을 앞둔 미 고등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해외에 나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SAT 점수보다 에세이의 독창성이 대학 입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남보다 더 특별한 경험을 쌓고 싶은 학생들이 중남미는 물론 아시아로 혹은 아프리카로 향한다는 것이다. 맨하탄 비콘 고등학교(Beacon School) 12학년 마 린(17)양도 올 여름방학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쌓았다. 삼촌팬들의 로망, 국민여동생으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 로엔(Loen) 엔터테인먼트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한류의 진원지를 직접 체험한 것이다.

SAT에서 이미 만점에 가까운 2,300점을 받은 린양은 자신의 인턴경험을 멋진 에세이로 승화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서울방문을 오직 에세이 준비를 위한 실용적인 목적이라고 한다면 한국대중문화에
대한 린의 순수한 사랑과 K팝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K팝은 어린 나이에 뉴욕에 온 1.5세 소녀에게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결정적인 매개체였다. 또한 “아직 학교생활과 친구들에게 정을 붙이지 못해 힘들었던 시절 위안이 되고 뭔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 열정의 대상이기도 했다.

마 린은 2년전 글로벌 한국가요 전문 사이트(allkpop.com)에서 전 세계 한류팬들에게 가수들의 소식을 전해주고 심층적인 분석도 제공하는 학생 기자로 이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다. 당시 막 출범했던 올케이팝은 린과 같은 열정적인 학생 기자들의 맹활약으로 불과 1년여만에 가장 영향력 있는 한류전문사이트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당시만 해도 린은 뉴욕의 모든 오디션에 도전했던 연예인 지망생이었다.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파파라치도 따라 다니게 하는’ 스타를 꿈꾸며 엄마를 비롯해 자신을 걱정하는 어른들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던 철부지 소녀였다.


10대에게 2년이라는 시간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 긴 시간이다. 다시 만난 린은 순수하고 앳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그 시간만큼 보다 현명해지고 철이 들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성숙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말하면서도 그토록 열광하던 ‘K팝의 성지’를 직접 체험했던 흥분보다는 나름대로의 차분한 분석과 전망이 앞섰고, 한류가 더 확산될 것을 확신하면서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부정적인 면도 제대로 짚어냈다.

일하던 회사 건물 지하실에서 맹연습중인 연습생들을 보면서 특히 미국에서 온 또래의 연습생과 대화하면서 “참 열심히 하고 다들 예쁘고 멋지다”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다들 너무 비슷하고 이미 인기를 얻은 가수들과 너무 흡사한 모습”에 벌써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린은 K팝이 다양성과 독창성을 유지하지 않고 언제까지 인기를 이어갈 지 염려했다. 연예인뿐 아니라 오랫만에 서울을 찾은 뉴욕의 10대 소년에겐 거리의 자기 또래들도 “예쁜데 모
두 비슷한 유행을 쫒아가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린은 실무적인 인턴 경험보다는 “다소 서툴렀던 한국어가 다시 늘었고 잊고 있었던 한국적인 에티켓을 제대로 배운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이번 방문의 성과를 정리했다.

미주의 한인 연예인 지망생들을 들뜨게 하는 각종 오디션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오히려 린은 그렇게 열심이던 오디션 지원을 중단했다. 올케이팝 리포터 활동에 들이는 시간도 이전보다 줄이면서 가수의 꿈보다는 자신이 선택해야 할 대학과 전공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아직 100% 확정하진 않았지만 린의 대학 기준은 나름 명확하다. 우선 돈이 안 되는 전공은 피하겠다는 것. 그리고 학교는 이름보다는 내실을 중시하겠다는 것.

현재 고려중인 학교 중 하나인 메인주의 보딘(Bowdoin) 칼리지가 대표적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리버럴 아트 부분에서 ‘전문가들은 다 인정하는’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학교다. 물론 아이비리그도 노리겠지만 남들이 “그게 어디 있는 학교에요?”라고 물어보는 대학도 소신껏 선택할 수 있다는 자세다.

스타이브센트와 브롱스 사이언스만 최고로 치는 많은 한인 학부모들에겐 낯설지만 다양하고 독창적인 커리큘럼과 지도방법으로 인문계 특수교로는 뉴욕시 최고로 꼽히는 비콘 스쿨에서 교육을 받은 것도 린의 유연한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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