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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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자폐아 양육기 ⑨ 

2011-10-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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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장애 및 자폐성 장애아를 위한 한국육영학교

변성희(뉴욕한미교육회 회장·뉴커머스고교 교사)

필자는 한국에 자주 나가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주’라는 표현 자체가 워낙 주관적이기에 누구에게는 1년에 여러 차례 걸친 한국 방문이 ‘자주’ 나가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겠고 미국에서 팍팍한 일상 속에서 가까스로 짬을 내는 대다수 이민자에게는 몇 년에 한 번씩 갈 수 있는 기회에도 감사하며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자주’일 수 있을 듯도 하다.

직장생활과 육아에 치여 쳇바퀴 돌듯 살면서도 에반이가 돌을 막 넘겼을 때 한국을 다녀온데 이어 이번 여름에 만 4세가 되어서 또 한 번 나갔다 왔으니 제법 ‘자주’ 한국을 다녀온 셈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한국을 ‘자주’ 나갔다 오게 되면 참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한국에 나가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는 한국에 역동적으로 발을 들여놓고 직접 헤쳐 나가면서 진보
하고 있는 한국을 내 살갗으로 부비며 느끼고 미국에 돌아오게 되면 한국은 ‘이래서 문제야’ ‘한국 사람들은 꼭 이렇더라’ 하면서 한국에 대해 쓴 소리를 한 번씩 하던 내 굳어진 사고가 확 벗겨져 나가면서 한국에 대한 내 쓴 소리를 깊게 밀어내버릴 수 있게 하는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이 그 감사의 이유다.


이번의 한국 방문은 원하지는 않았으나 숙명으로 부여되었고 그러기에 더욱 특별하고 애틋한, 자폐아의 엄마라는 모습으로 다가갔기에 자폐아를 보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내 굳어진 사고를 걷어 내는 기회를 많이 접하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은 장애인 시설이 들어선다면 동네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진다고 시설을 못 들어오게 농성을 한다던가, 어렸을 적 필자의 이웃에 살고 있었던 초등학생 나이의 자폐아를 한 반 아이들이 쫓아 다니면서 바지를 벗어보라고 놀리듯 채근하여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아랫도리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터벅터벅 걸어가 엄마의 눈에 눈물을 쏟게 하면서도 자폐아에 대한 마땅한 학교시설이 갖추어 있지 않았기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곳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한국 방문으로 인해 한국에도 자폐아를 위한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학교 방문을 통해 앞서나가는 학교의 시설이나 뛰어난 교사의 자질을 알게 됨으로써 자폐인을 대하는 한국의 달라진 사고를 느낄 수 있어 개인적으로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한국 서울시 송파구에 사단법인 아이코리아에서 설립한 육영학교가 바로 그 학교이다. 정서장애 및 자폐성 장애학생들을 위해 한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특수학교로서 이 분야에서 최고의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데 이 학교 교사들의 자부심이 상당하였다. 육영학교에서는 매년 여름 현직교사들을 다른 국가로 보내 특수교육 시스템을 직접 보게끔 하는 해외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연도에는 육영학교에서 뉴욕시의 특수학교를 견학하기 위해 문현선·류지영 현직교사 두 명이 뉴욕을 방문한 바 있고 이를 인연으로 하여 이번에 한국을 방문할 때 그들의 학교를 방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연결이 되었다.

육영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있다. 저학년 교실은 많은 자폐성 장애아들이 사진을 찍듯이 무엇을 기억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여러 가지 비주얼이 들어간 시간표, 사진이 일일이 붙여있는 정돈함 등이 눈에 띄었으며 화장실이 두 학급 사이에 하나씩 배치돼 있어 화장실 지도까지 교사가 섬세하게 지도해줄 수 있는 구조가 인상 깊었다. 아이들의 흥미를 여러 곳에서 찾게끔 하기 위하여 인라인스케이트장, 도자기 교실, 다양한 음악기구를 갖추고
있는 음악실, 넓직한 실내 운동장 등이 갖춰져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이들의 지적능력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배려하여 만들어진 개별프로그램과 조만간 학교를 졸업하여 사회를 나가게 되는 의젓한 성인이 되는 고등학생을 위한 직업반이 개설돼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무엇보다 육영학교를 빛나게 했던 것은 학교를 끌어나가는 교사들이었다. 뉴욕에서의 특수학교 연수와 이번 한국방문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문현선·류지영 교사는 자폐아동을 가르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자폐아를 둔 부모인 필자에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마음을 한결 같이 보여주었다.

한국 자폐인사랑협회에서 운영직을 겸하고 있는 한은주 교사는 오래된 교직생활에서 보여 지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대화를 통해 공유하는 과정에서도 예의 자폐아를 둔 부모를 위하는 섬세함이 배어나왔다.그들은 단순히 미국에서 잠깐 방문한 학부모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교사들은 그들만의 따뜻함과 열정이 겸비된 탄탄한 실력을 내보임으로써 자폐인이 절대 살아가지 못할 곳이라고 막연하게 치부해버렸던 나의 굳은 생각을 걷게 해 주었던 일등공신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이러한 교사들이 이끌어가는 학교가 있는 한국을 보면서 꾸준히 포용의 자세로 바뀌어나가는 한국사회에서 자폐인들도 한쪽으로 몰려진 숨겨진 삶이 아닌 양지로 조금씩 끌어 내보여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랑말랑하게 입혀진 나의 이런 새로운 생각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문의: mom_advoca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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