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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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를 돌아보며

2011-10-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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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06 미터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동부에서 가장 큰 항구이며 극동함대의 본거지’라는 명성과는 달리 상상했던 것보다 작은 도시였다. 긴 해안을 따라서 오르내리는 평탄치 않은 지형 위에 조성된 도시라서 마치 샌프란시스코에 온 느낌이었다.

지난달 LA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관계자들과 중국(연길-용정-도문), 북한(나진-선봉)을 거쳐 연해주를 방문했다.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관통하는 간선도로는 일제 중고차로 넘쳐(반면에 버스는 모두 한국 대우차) 매우 혼잡하였고 시외로 통하는 길은 내년 개최되는 APAC 대회를 앞두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느라 먼지 구덩이를 지나는 것 같았다.


시청 광장에서 도보로 십 여분 떨어진 해변공원은 최근에 만들어졌다는데 현대미와는 거리가 멀었고 우측으로는 북한으로 가는 바다가 펼쳐있었다. 그래도 며칠 전 방문했던 북한의 라진 항에 비하면 훨씬 나은 형편이었다.

중국 연길에서 아침 7시 반쯤 시외버스를 탄 뒤 훈춘을 거쳐 러시아 국경을 넘어 우수리스크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였다. 우수리스크는 연길, 훈춘과 더불어 항일운동의 한축을 이뤘던 우리 민족사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어서 그곳 고려족 교회에서 예배를 보았다. 그 다음날은 월요일인 9월12일, 마침 추석날 우리 일행은 남쪽으로 약 4시간 걸리는 블라디보스톡을 찾았다.

북한의 첫날은 라진호텔에서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 1층 로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제법 넓은 호텔 앞마당을 남녀 몇 사람이 싸리비로 쓸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보았던 광경이라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하는 생각보다는 정겨운 마음이 앞섰다.

라진항의 출입구는 경비경이 지키고 있었는데 여권을 제시하고 허락을 받은 후 예쁜 여군이 열어주는 차단기를 지나 부두에 이르니 대형 러시아 선박이 정박해 있었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정박료가 러시아 보다 저렴하여 이곳에 세워 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어떤 선박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오징어 철이라는데 혹시 기름이 없어서 조업을 못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개의 부두 가운데 가장 좋은 제3부두는 러시아와 49년간 빌려주기로 협약을 맺어 러시아 기술자와 근로자 천여 명이 들어와 있었다. 중국은 자기들이 4,5 부두를 새로 건설할 테니 빌려달라고 하면서도 진척이 부진하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태평양과 닿아있지 못한 관계로 바다 보다는 오히려 육로에 힘을 쏟는 것이 지정학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두 끝 멀리에 북송선으로 유명했던 만경봉호가 보였다. 지금은 폐선하고 새로 지은 선박이라고 한다. 현대의 금강산 관광선에 비해 아주 작았으며 얼마 전 중국, 미국 등 외국기자들을 태우고 금강산에 시험운항을 다녀왔다고 했다.

앞으로 주로 중국이나 러시아 인들을 태우고 금강산 관광으로 외화벌이에 나설 심산일 것이다. 북한의 경제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난파선 같다는 느낌을 도처에서 받았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수리스크로 돌아와 식사를 마쳤을 때는 밤하늘에 보름달이 걸려있었다. 이번 LA 기윤실 관계자들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북한 어린이를 위해 직접 운영하는 빵공장을 돌아볼 목적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난파선에 타고 있는 우리 민족, 우리의 자녀인 굶주린 북한 어린이들이 미주 한인들의 사랑으로 배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일까.


조만연
수필가ㆍ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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