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적선소

2011-10-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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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머리빗을 가지고 다닌다. 간단한 군인용 머리빗이다. 아마 군대 시절부터 생긴 버릇 같다. 짧은 머리도 모자를 벗으면 흐트러진다. 노란머리도 검은머리도 흑인들의 볶은 머리도 빗질을 하는 것이 미국 군인의 문화이다. 빗질 반듯하게 가르마 타고 인터넷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뉴스로 보는 세상이 어수선하다. 세상 천지에 가장 안전한 투자처는 미국이라 했다. 미국 신용도 어제오늘이 다르다. 이제 ‘믿지 마라 미국’이 돼가고 있다. 그래도 새벽은 오고 한낮 햇살 속에 건강한 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한다.

이곳저곳에서 경기 탓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라님이 잘못했다고 책임을 돌려보지만 이리 저리 얽히고설키며 갑남을녀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사업가들이 많다. 불경기 3년에 물설고 낮선 이 땅에서 일군 사업이 위태위태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내려 보면 자식이 걱정이고 둘러보면 일가친척도 삐꺽댄다. 이런 불경기에는 내 건강이라도 조석으로 챙겨야한다.


이른 아침 테니스 코트에 나갔더니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적선소’라는 낮선 어휘가 들린다. 귀가 솔깃해서 들으니 참 멋진 뿌리를 가진 말이다. ‘적선’이란 좋은 일로 선을 쌓는 것이고 ‘소’란 머리빗을 뜻한다. 적선소란 적선을 쌓는 머리빗이란 뜻이다.

말뜻의 유래는 스님들에게 머리빗을 파는 장사속의 말에서 연유한다. 빡빡머리 스님에게 빗을 팔자는 상인의 생각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빗 한 개를 주지 스님한테 팔 수 있다”고 한다. 두번째 사람은 “백 개를 절의 신도들께 팔겠다”고 한다.

그런데 세번째 사람은 “만 개를 판다”는 것이다. 주인이 놀라 물으니 빗에 유명한 스님이 ‘적선소’라고 써주면 만개는 쉽게 팔 수 있다고 한다. 생각을 바꾸면 장사도 잘하고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적선소’의 속뜻이다.

어렵고 힘든 때이다. 잘 되는 돈벌이를 적선소적인 발상으로 생각해본다. 한마디 말로 천양 빚 갚는다고 하고 힘들고 어려울 땐 입부조도 적선이 된다. 아이에게 꿈을 주면 그것도 적선이 된다. 배고플 때 밥 사주고 어려울 때 십시일반 도와주면 그 또한 적선이다. 맑은 눈과 열린 귀로 주변을 돌아보면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불경기에도 잘 나가는 사업가들은 어쩜 남다른 경영 철학이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노력에 덧붙여 복이 많은 사람들도 있다. 복 중에는 전화위복도 있다. 하다못해 조상 음덕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동양사상에 복이란 이승이든 저승이든 덕을 많이 쌓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라 한다.

“이 빗을 사세요. 이 빗을 사세요. 그리고 적선하세요. 적선하세요.”
유명한 스님이 빗에 써 넣은 ‘적선소’ 글귀는 장사꾼의 기발한 아이디어지만 빗을 사는 착한 마음이 세상에 많다면 든든하다.

거울에 비친 말끔한 얼굴을 보라. 단정히 머리를 빗고 밝게 웃어 보자. 시퍼렇게 멍든 생각은 훌훌 털어버리자. 생각을 바로 잡고 힘찬 하루를 살자.


강신용 / 공인회계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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