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부 스트레스

2011-09-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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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에 다니는 둘째가 학교로 돌아갔다. 여름 내내 학교에서 일을 하다 휴가차 며칠 집에 들렀는데 일을 계속하러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이제 3학년이 된다. 그런데 진로결정 관계로 나름대로 고민이 많은 듯 했다. 올 여름에는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일을 경험했는데 다음 여름에는 다른 것을 시도해 보고 싶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으로 진학하든 아니면 직장을 구하든 3학년 한 해가 가장 중요함을 알기에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가도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 학기에 수강할 과목들도 지금까지 들었던 과목들에 비교하면 무척 힘든 과목들이라고 했다. 둘째도 이제는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만일 내가 대신 공부해줄 수만 있다면 해 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다시 한 번 분발을 다짐하며 학교로 돌아가는 둘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대학 시절이 생각났다. 참 스트레스 많았던 때였다. 미국 온지 3년 만에 대학에 입학했던 나로서는 처음부터 힘들었다. 평범한 학생들 속에서 어느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고등학교 때와 달리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 있던 대학교에서 영어로 공부하며 경쟁해야 한다는 게 절대로 쉽지 않았다.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그때까지 안하던 커피에 손을 대기 시작하게끔 만들었다. 쏟아지는 잠을 버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한 잔으로 부족하면 당연히 추가로 커피를 따랐다. 계속 커피를 마셔도 안 되는 시점에 다다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다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잠자리에 들곤 했다.

당시 나의 기숙사 바로 뒤편에는 소방서가 있었다. 신고가 접수 될 때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들이 출동하곤 했는데 커피 네, 다섯 잔 후엔 그 요란한 소방차 사이렌 소리도 듣지 못한 채 곯아떨어질 정도로 피곤해 질 때까지 공부하던 날들이 생각난다.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은 상급학년으로 올라가서도 변함없었다. 그런데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는 법이다. 공부하다 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납득시킬 명분이 있어야 했는데 그 때 가장 적절한 이유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배고픔이다.

허기진 상태에선 공부에 집중할 수 없으니 잠시 뭣 좀 먹고 와야 한다는 게 늘 적당한 구실이 되곤 했다. 물론 혼자 먹으러 나가기에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드는 관계로 꼭 친구 한 명을 불러 같이 나가곤 했다. 그리고 많이 찾아 가던 곳이 기숙사 근처 피자가게였다. 둘이 먹기에는 중간 사이즈의 피자면 충분했다. 그러나 먹는 것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우리 둘은 약 2달러만 더 주면 되는 사이즈가 두 배되는 큰 피자를 주문했다. 절반만 먹고 싸 가려던 계획이 거의 매번 실패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큰 피자 한 판을 다 먹고 기숙사로 돌아가면 당연히 배가 불러 바로 공부를 다시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소화를 시킨다는 핑계로 기숙사 일층에 있는 휴게실에서 다른 학생들과 편을 갈라 푸즈볼 경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이 경기가 경쟁심을 불러 일으켜 이기면 다른 팀들의 도전을 받아 주느라 계속하게 되고, 지는 경우에는 복수할 기회를 얻기 위해 기다리게끔 했다. 그러다보면 밤은 더욱 깊어 가고 결국은 다음날 아침 수업에 지장이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를 이유로 바로 잠자리에 들곤 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에 싸여서 살던 그 때를 생각하며 그러한 스트레스 속으로 들어가는 둘째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해왔다. 사는 게 무엇이라고 우리는 이렇게 경쟁과 압박감의 노예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갈수록 더 심해져가는 상황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학교로 돌아가는 애의 뒷머리에 대고 “그래 너의 앞으로의 인생 모두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는 3학년 한 해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을 던지는 나는 과연 어떤 아버지인가?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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