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수필가
8월의 햇살에 티 한 점 없다. 눈부신 햇빛을 올려다보니 마치 수만 점 희고 붉은 유채색 꽃잎들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 같다. 눈보라가 겨울의 숨결이라면 이 화사한 햇살의 꽃보라는 여름하늘이 내리는 강복의 손길 같다. 햇보라 속에 온 몸을 담근 채 유유히 날아오르고 싶다.
햇살이 꽃잎처럼 여겨지는 것은 두보의 시 ‘곡강’(曲江)때문이다. “꽃잎 한 점에도 봄이 가는데/ 바람에 만 점 꽃잎이 진다.” 시인은 떠나가는 봄을 못내 아쉬워한다. 흘러가는 세월을 애타게 붙들고 싶다. 낙화 한 점에도 봄이 가는데, 수만 점 흩어지는 저 꽃잎 속에는 얼마나 많은 세월들이 덧없이 흘러가는가하는 탄식이다. 이 시구가 지난 봄 서둘러 세상 떠난 문우를 배웅하고 난 뒤 마음 한 구석에서 내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봄을 여의고, 8월의 하늘을 보면서도 아직 그 시구에 매달려 있다. “아! 햇살 한 줌에도 여름은 가는데/ 바람에 만 점 햇보라가 흩어진다.”
오랜만에 저녁 글 모임 후 돌아가는 길에 선배님이 텃밭에서 길렀다고 상추보따리를 건네 주셨다. 집에 와서 보니 여린 상추를 차곡차곡 재어 깔끔한 통에 담으셨다. 족히 몇 백 장은 될 듯 한데 정성들여 쌓기도 하셨다. 아마도 두 내외께서 한 여름 내내 키운 상추를 이웃과 나눠 먹으라고 풍성히 주신 것 같다.
상추가 입안에서 아삭아삭하다. 잎과 잎 사이에 물을 살짝 얼려 포개셨는지 며칠 후에 먹어도 신선하다. 사랑받고 있다는 행복감이 세포 속까지 밀려든다. 그러면서 선배님 부부께 우리들은 아무 것도 먼저 해드리지 못한 게 부끄럽다.
선배님은 한국에선 문학도였다. 그런데 미국 오셔선 만학으로 공대를 졸업하고 토목기술사가 되셨다. 주정부 토양실험실 책임자로 오래 계셨는데 어느 날엔가 지나가는 얘기처럼 하셨다. “내가 뽑은 신입들 중에 실력이 모자라 진급누락을 시킨 녀석이 나를 고소한 적이 있었소. 상급자인 내 영어에 하자가 있어 자기가 탈락됐다는 주장이었지. 결국 내가 이겼지만, 그 사건을 치루면서 이민 1세가 이방 땅에서 받는 모멸감을 온 몸으로 감당해야만 했었소. 어찌 생각하면 참 쓸쓸한 세월이야”
미국 직장을 수십 년 다닌 나는 선배님의 속내가 어땠는지 잘 안다. 아무리 오랜 세월 지나도 내가 하는 미국말엔 고향의 억센 억양이 박혀있고, 급하면 앞뒤가 어긋난 한국식 영어가 튀어나온다. 어눌하게 표현된 내 참신한 복안보다 매끄러운 토박이들의 혀로 묘사된 진부한 안이 선택될 때마다 엄습하는 자괴감. 리더의 자리에 서서도 서양인들만의 이심전심 적인 대화에서 소외되는 내 모습이 초라하고 힘겨웠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그리워서 내가 은퇴를 서둘렀는지도 모르오. 물론 평생직장 덕에 자식들 공부시켰지만 내가 아닌 나를 산 세월이었던 듯싶소. 지금은 모국어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사색도 하고, 게다가 내 아버지를 닮은 팔자걸음도 걷고 사니 나를 찾은 것 같아.”
선배님은 말이 통하고 나눌 사람이 그리워서 텃밭에서 봄 종일 상추를 가꾸셨던 것이다. 꽃잎 한 점에도 봄이 가는데, 햇살 한 줌에도 여름은 가는데, 무작정 흘러가는 세월이 아까워 오늘도 누군가를 생각하며 상추를 따셨을 것이다. 그리고 한 잎 한 잎 켜켜이 그리움의 정을 재어 담으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