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멜 밸리

2011-08-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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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시인

카멜 밸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딸애 네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그 애 시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함께 투자를 해서 샀었는데 부동산 불경기가 닥치면서 딸도 이를 피해가지 못하고 결국 집을 매도하게 되었다. 자동차로 그리 멀지 않아 우리 가족들은 시간만 나면 그곳에 가서 모이곤 했다.

카멜 밸리는 바닷가 비치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경치가 수려하고 비치엔 안개가 끼어 있어도 그 곳만큼은 날씨도 좋고 아늑해서 주말 별장으로는 정말 제격이었던 곳이다. 우선 그곳은 햇볕이 다르고 공기가 달랐다. 햇빛은 더 눈부시고 공기는 달콤했다.


진한 커피 한잔을 만들어 가지고 드넓은 데크에 나가면 앞에는 짙푸른 산과 계곡과 울창한 나무들이 어우러지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이곳이 정말 별천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만약에 천국이 있다면 이곳이 가장 가까운 곳이 아닐까?”라고.
우리 부부가 결혼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카멜을 처음 찾았을 때, 나는 늙어서 은퇴를 하면 이곳에 마지막 둥지를 틀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인생살이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가 꿈꾸는 바람과 현실은 늘 동떨어지게 마련이고 살다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그 꿈은 멀어져만 가게 된다.

딸애 시어머니였던 로라는 특별히 이곳을 사랑했다. 딸애의 결혼식도 카멜에서 치러졌다. 로라는 병원에 있어서 사랑하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치 못했다. 결혼식 이틀 뒤에 로라는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우리들은 크루즈며 여러 곳의 여행을 함께 다녔다. 카멜에 와서 며칠씩 같이 지내기도 했다. 그녀는 특별히 내가 만든 볶음밥과 군만두를 좋아했다. 그녀는 음성이 부드럽고 행동이 우아한 여자였다.

이제 로라도 가버리고 카멜 집도 추억 속에나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심고 가꾸었던 장미꽃들과 과일 나무들, 그 숲속을 잽싸게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던져준 과일 조각과 야채들을 물고 달아나던 작은 토끼들은 아직 그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특정한 장소는 어느 특정한 사람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카멜은 로라를 기억하고 우리 가족들의 행복했던 순간들도 그곳에 저장되어 있다. 며칠 전 딸애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 왔다. 로라의 젊을 때의 사진이었다.

긴 검은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날씬한 여자가 행복하게 웃고 있다. 그녀의 남편 빌도 그 옆에서 웃고 있다. 아마 이 사진은 그들의 삶에서 가장 정점을 이루었던 황금기에 찍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사람들이다.

다만 한때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모두 다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고 우리들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남겨놓고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카멜 밸리는 그곳에 영원히 남아서 또 다른 사람들의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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