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러기와 펭귄

2011-08-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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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기러기 아빠’ 혹은 ‘기러기 가족’이란 말이 생겨났다. 기러기 이야기가 나오면 요즘은 독수리와 펭귄 이야기도 뒤따른다. 독수리 아빠는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 가족이 있는 곳으로 자주 날아갈 수 있지만 기러기 아빠는 1년에 한번 정도 철따라 가족과 상봉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태생부터 날지 못하는 펭귄 아빠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 가족을 만나 보기는커녕 매달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를 보내기에도 벅찬 가장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에 있다 보면 생각보다 독수리 아빠를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독수리 아빠가 스스로 기러기 아빠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용인 즉 독수리는 언제든지 가족이 있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고 또 그런 그를 처음에는 가족들이 반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덜 반갑게 여긴다고 한다.

정착 초기에는 가족들이 타국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들 나름대로의 일정한 생활패턴이 생기는데 이 무렵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독수리 아빠로 인해 생활리듬이 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주부 입장에서 남편이 오면 아무래도 식사준비 등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지기 때문에 차츰 남편은 뒷수발을 해야 하는 손님과 같은 존재로 치부되기 십상인데, 그 이후 독수리 아빠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의 날갯짓을 조금씩 줄인다고 한다.


톰 워샴(Tom Worsham)의 ‘기러기 이야기’를 읽어보면, 기러기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ㅅ”자 대열을 그리며 남쪽으로 4만㎞의 기나 긴 여행을 한다고 한다. 맨 앞에 날아가는 리더 기러기의 날갯짓은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 뒤따르는 기러기가 혼자 날 때보다 71% 정도 더 멀리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여행 도중 리더 기러기가 지치면 대열 안으로 들어가 쉬게 되고 또한 그런 그를 대신해 다음 기러기가 선두에 나와 날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기나긴 여행 동안 기러기들은 끊임없이 ‘끼럭∼끼럭~’하며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는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겹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라고 한다.

남극에 사는 펭귄도 기러기처럼 항상 무리를 지어 움직인다. 무리에서 이탈할 경우 추위에 얼어 죽기 때문이다. 수개월 동안 밤이 계속되고 혹독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남극의 겨울, 펭귄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서로 무리를 지어 몸을 맞댄 채 서서 체온을 유지한다. 특히 강한 눈보라가 정면으로 불어올 때 맨 앞에 서있는 펭귄들은 온몸으로 거센 눈보라를 막아선 채 한참을 견디고는 무리의 맨 뒤로 간다. 그러면 다음 펭귄들이 또다시 눈보라를 막고는 뒤로 돌아가 무리에 합류한다. 이것을 반복하며 남극의 추위를 견뎌내는 것이다.

한국에 있다 보면 주위에 기러기 아빠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직장생활하며 받는 월급으로 외국에 있는 가족에게 매달 정해진 생활비와 교육비를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또한 수 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는 기러기들의 고충은 이

말로 다하기 어려운데 어떤 기러기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빠지는 원형탈모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의 기러기 아빠들은 우스갯소리로 아무리 기러기 생활이 힘들어도 절대 ‘털 빠진 펭귄’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기러기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낯선 타국 땅에서 엄마 혼자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더 나은 교육환경과 자식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 눈물겨운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기나긴 여행 동안 기러기들이 “끼럭∼끼럭~”하며 서로에게 격려의 소리를 보내는 것처럼 우리나라 기러기 아빠와 엄마들도, 비록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어 힘들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사랑과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박정오
한국 외대 교수
UC버클리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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