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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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생각

2011-08-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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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며칠 전 한 한국방송에서 특별기획으로 방영한 동무 생각이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나는 너를 위해 노래 부른다’ 박태준 작 동무생각이란 가곡의 일절이다. 수십년 전 갈래 머리를 땋아 내렸던 청순한 여학생들은 이제 팔십 노인들이 되어 그들의 젊음을 불태웠던 청라 언덕에서 재회를 한다.

산천은 변함이 없고 그때 부르던 노래도 그대로인데 오직 흘러가는 인생만 무상하다.

우리가 어릴 적만 해도 친구를 동무라고 불렀고 그 말이 정다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동무가 친구로 바뀌고 말았다. 아마 공산당들이 이 말을 쓰는 바람에 바뀐 것 같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슴이 짠해졌고, 이제는 볼 수 없는 여학교 시절의 동무들이 생각이 나면서 또 그리워졌다.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진실로 동무 혹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이며 몇이나 될까? 한 사람의 진실한 친구를 가진 자는 부자라고 누가 말했던가?

진실한 친구는 서로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공유한다. 어릴 적 동심 속에서 만난 동무들은 그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마음이 순수했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랐던 인희와 금자, 또 내 사촌이면서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가버린 현숙이, 고등학교 시절에 매일 붙어 다니면서 안국동과 가회동 골목을 휩쓸고 다녔던 선기와 혜숙이, 그리고 대학 시절 단짝이었던 정애와 희숙이.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사실 연락이 끊긴지 수십 년 만에 내가 쓴 글을 어떤 여성 잡지에서 보고 초등학교 동창들이 전화를 해와 우리들은 근 오십년도 넘어 한 동창 집에서 재회를 할 수 있었다. 금자는 살이 너무 쪄서 알아볼 수가 없었고 인희는 약간의 치매기가 있다고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나도 너무 많이 변했다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마 변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세월은 너무 많이 흘러갔다. 그 후로 몇 번 더 만났지만 첫 번째의 흥분이 가시자 우리들은 더 이상 함께 할 대화가 없어졌다. 그들은 한국에서, 나는 미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너무 오랜 세월을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에게 여전히 그리운 동무들이다.

진정한 친구란 나이나 학벌, 그리고 경제적 환경에 지배되지 않고 오직 서로 간에 영혼이 통하고 함께 있으면 무조건 좋고 마음이 편한,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닐까? 지난 몇년 간 한국에서 살 때 비록 나이들은 어렸지만 정말 마음이 통하던 몇몇의 젊은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도 서로 소식을 전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가끔 그들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들과 함께 다녔던 찻집과 빵집, 식당들과 공원과 거리들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해 꿈속을 헤매고 다닌다.

언제 또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지금은 아무 것도 기약할 수 없다. 다만 동무생각이란 그 가곡을 입 속으로 조그맣게 불러 보면서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그리운 얼굴들을 그려 본다. 아직도 내게는 보고 싶은 동무들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내 삶은 살만하다고 자위해 본다.


김옥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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