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2011-07-30 (토)
크게 작게
남현실/시인

나를 왜 일만 시키느냐고 크게 한번 투덜거렸더니 두 아이들이 급히 돈을 걷어 휴가를 보내주었다. 준비할 것도 없이 기본반찬과 이불만 차에다 싣고 무작정 떠났다. 동부의 그랜드 캐년인 왓킨스 글렌으로 길을 나섰다.

산등성이가 겹겹이 주름처럼 접힌 애팔레치아 산맥 그 산허리를 롤러코스터 타듯 오르내리며 시간을 풀어놓고 북으로 달렸다.


드디어 왓킨스 글렌에 도착했다. 더 이상 고치고 다듬을 것 없이 완벽하게 써놓은 한편의 서정시, 그렇게 표현하면 조금은 맞을까?

그날 밤 우리는 인공의 불빛이 모두 차단 된 숲 속 캠프장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미국에 와서 일만 시켜 미안했는지 남편은 밥도 짓고 국도 끓여 소꿉장난하듯 저녁밥을 맛있게 해 주었다. 차 안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누웠지만 그대로 잠들기에는 달빛의 유혹이 너무 강해, 밖으로 후다닥 나와 보니, 건너편 산은 어둠보다 더 검게 엎드려 있었고 별들은 나뭇잎 사이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밤이슬에 옷이 눅눅해질 때까지 숲을 바라보면서 걱정거리들을 한겹 한겹 흰 속이 보일 때까지 다 벗겨냈다. 그런 다음 버리고 털어버린 자만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큰 심호흡을 하며 맑고 깨끗한 공기를 아주 실컷 들이마셨다.

준비도 없이 무작정 나선 길이었지만 이번 3일의 여름날은 참 아름답고 행복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