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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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

2011-07-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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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여름 태양이 대지를 불가마로 만든다. 나는 뜨거운 것을 좋아하기에 여름을 좋아한다. 뜨거운 생명, 뜨거운 사랑, 뜨거운 정열, 뜨거운 피… 얼마나 좋은가. 뜨겁기 때문에 곡식도 무르익고 과일도 성숙하니 풍요의 절정이다.

요즈음 집 근처에 있는 녹음이 짙은 공원을 찾아가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하고 잔디 위에 누워 읽고 싶은 책을 읽기도 하고 풀 냄새, 흙냄새를 맡으며 싱싱한 활력도 얻고, 나무들의 밀어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에 귀를 씻는 것이 즐겁다. 그러면서 나무와 풀, 구름,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기쁨에 생동감이 넘친다.

수목들의 밀어는 사람들의 말보다 아름답다. 사람과의 대화에는 이해보다 오해가 많고 칭찬보다 꾸중이 많아 말에 기교와 예의가 있어야 하나 자연은 침묵으로 말을 받아주고, 침묵으로 말을 지켜준다.


세계 문학가들 중 여름과 깊이 친교 했던 사람으로는 미국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떠오른다. 그는 일 년 내내 작열하는 여름뿐인 눈부신 원시의 땅, 칼라파고스 섬에 매료되어 원고지와 펜을 챙겨들고 그 섬으로 달려가곤 했다는 것이
다.

그의 희곡 ‘지난 여름 갑자기’의 첫 페이지에 베나 블 부인이라고 불리는 중세풍의 한 여자가 순은장식이 달린 중세풍의 지팡이를 짚고 등장한다. 그녀의 아들은 열다섯 살 때 열병을 앓아 심장판막에 금이 간 무명 시인이다.

이 병약한 아들은 언제나 흰 모자에 흰 양말, 흰 옷 외에는 입지 않는 결벽증 환자인데, 여름이 되어야만 영혼이 뜨거워져 오직 한 편의 시를 쓰곤 한다.

그녀는 아들의 시를 ‘여름의 시’라고 부른다. 해마다 열정에 찬 여름이 오고 아들이 한 편의 시를 쓰면 두 모자는 정원에 있는 아틀리에로 들어가 18세기적 인쇄기로 시를 찍어 내곤 한다. 그녀의 아들에게 여름을 제외한 아홉 달의 세월은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한 잉태와 산고의 기간이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작열하는 여름은 시와 생명을 낳는 창조의 시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해변 문학제를 연다. 바닷가에서 문학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룬다. 그들 중 피서를 하려고 바닷가 문학축제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름에 시를 읽고, 시를 배우고, 시를 감상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외로운 시인은 여름을 택해 존재를 다한 한 편의 시를 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도 여름을 속절없이 탕진해 버릴 수는 없다. 뜨거움이 여름에 절정이듯 우리도 뜨거운 마음으로 뜨거운 인생을 살아야 할 것 같다.

창조에 도전하기 위해 뜨거운 여름 같은 불꽃을 가슴에 담고 이 여름에 머물며 산호나 진주를 키우는 수고와 진통이 있어야 될 것 같다.


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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