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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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예쁘게 차려 입고 나들이 가자

2011-07-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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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은주 예술인의 끈(KAACC-USA) 회장 및 교사(PS 150)

링컨 센터는 나의 놀이터와 같은 곳이다. 대학원 다닐 때 그리고 맨하탄에서 일할 때 나는 걸핏하면 링컨 센터에 가서 혼자 놀곤 했다. 분수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도 듣고 벤치에 앉아 조각상을 보면서 하늘과 나무들과 이야기도 하고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에 찾아오는 링컨센터 손님들을 구경하면서 나는 뉴욕에서의 삶을 매우 즐기며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얼마 전 친정엄마와 여동생들과 ‘남태평양’을 관람하러 간 적이 있다. 이 뮤지컬은 특히 나에게 특별한 뮤지컬이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연극반과 합창반에 등록해 미친 듯이 연극을 했었다. 그때 주인공으로 나는 남태평양에 나오는 벌러디 메리역을 맡아 재미있게 공연도 했다. 공연 후엔 교장과 교감 그리고 담임선생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블러디 메리’라고 부르곤 했다. 복도에 지나갈 때마다 "Hello, Bloody Mary! Got some grass skirt?"하면서 재미있는 호칭으로 내 스승 및 친구들이 부르기도 했다. 아! 그리운 나의 중학교 시절. 감수성 예민하고 많이 울고웃곤 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또 한 번의 사춘기를 겪고 싶지는 않다. 그 세월도 꽤 오래전에 흘러갔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남태평양 관람에 앞서 링컨센터 인근에 가서 친정엄마와 동생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던 중 나는 참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연세가 꽤 많은 외국인 노인이 아주 예쁘게 차려 입고 화장도 화사하게 하고 지팡이를 짚으며 저녁식사를 혼자 하러 나오신 것이었다. 와인도 마시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음식을 맛있게 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멋진 신사분이 샤핑가방을 들고 혼자서 식사를 하시는 모습도 보았다. 동양여자 넷이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말하면서 식사하는 모습을 훔쳐보다 가끔 눈이 마주 칠 때면 미소 짓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던 신사분도 계셨다.

할머니는 물론 인근에 사는 분이기에 지팡이를 짚고 혼자 저녁 식사하러 나오신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내 친정엄마께 "엄마! 저 할머니 좀 봐. 너무 예쁘지? 엄마도 혼자서 예쁘게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 드시러 나오는 연습을 하세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래 알았다. 나도 까짓것 한 번 해주지"하시면서 여자 넷이서 깔깔대며 웃었다.흔히 우리는 남을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자신과 동행해 주지 않는 부인과 남편이 집에 그냥 있겠다고 하면 불평하면서 투덜투덜거리곤 한다.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 남이 내 행복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만일 가족이 나와 시간을 함께 해주지 않으면 혼자서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지내는 것도 행복을 찾는 일이다.

우리는 때로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혼자서 식당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혼자서 쇼핑 가는 것, 그리고 산책도 혼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대학에 다닐 때도 늘 보면 한인 학생들은 우르르 몰려 다녔다. 나는 그 풍경에 익숙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있으면 자유로웠고 누구와 약속시간을 지키느라 분주하지 않아도 됐다. 혼자만의 세상에 들어가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반사회적인 인물은 아니다. 친구들도 많았고 또 때로는 나도 물론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했다. 특히 선배나 친구들과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철학이나 정치를 토론하기도 했고 인생을 함께 고민할 때에도 돌이켜보면 참으로 행복했었다.

지금 누군가 만일 혼자 남겨져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함께 시간을 같이 보낼 사람이 주변에 없다 하더라도 결코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믿으면서 누구보다 재미있게, 그리고 자유롭고 예쁘게, 이왕이면 멋있게 차려 입고 나가서 맛있는 음식도 맛보며 ‘인생 나들이’를 하면 어떨까? 무덥긴 하지만 바깥세상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멋진 여름이 찾아온 만큼 혼자인 사람들도 한번쯤 용기를 내어 혼자만의 외출을 직접 실천해보면 좋을 것 같다.

자녀와 남편, 일거리와 일상에 치여 사는 상황이라도 전화는 물론 컴퓨터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내일 찾아올 멋진 인생의 한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해보는 것도 좋은 출발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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