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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자폐아 양육기 ⑥ 니커슨 레터가 보여주는 교육청의 무능함

2011-07-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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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희 교사(뉴커머스고교)

뉴욕시에는 장애아동을 위한 학교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공립학교, 시교육청이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사립학교, 그리고 부모의 사비로 등록금을 내야하는 사립학교 등이다. 아이가 장애가 있고 공립학교에 적절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사립학교를 염두에 두고 있을 때 시교육청에서 ‘니커슨 레터(Nickerson Letter)’를 받게 된다면 그날 저녁 샴페인을 따고 축하하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니커슨 레터는 뉴욕시 교육청이 장애학생에게 적절한 공립학교 프로그램을 제안하지 못할 때 어떠한 사립학교를 가더라도 1년 등록금을 교육청이 부담해야 한다고 지정한 특수교육법안이다. 니커슨 레터는 등록금 부담만을 교육청에 돌리기 때문에 사립학교가 아이에게 맞는지, 그 학교에 입학할 자리가 있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지만 대부분 니커슨 레터를 받게 되면 부모들은 일단 사립학교의 등록금 문제로 버거워하지 않아도 되기에 큰 안도로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몇 주 전에 이 니커슨 레터에 관한 빌 데 블라이조 뉴욕시 공익옹호관 사무실에서 뉴욕시 교육청의 장애학생 교육관리에 관해 발행한 보고서(Rocky Start: Problems with ‘Turning Five’)를 읽고는 자폐증을 지닌 한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뉴욕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뉴욕시 공립학교 교사로, 시교육청의 무능한 일처리에 입이 떡 벌어져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입을 다물기가 힘들 정도다.

올해 6월15일까지 뉴욕시 교육청은 장애아동에게 적절한 공립학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실패해 유치원에 입학하는 2,500명의 장애가 있는 프리스쿨 학생에게 니커슨 레터가 발행됐다. 데니스 월캇 시교육감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와중에 빚어진 결과라며 변명에 가까운 공식 입장을 내놓았지만 2,000명이 넘는 프리스쿨 학생에게 어떤 학교로 가라는 추천조차 제때 못했던 것은 명백한 시교육청의 무능한 일처리로밖에 볼 수 없다. 이 2,500명에 해당하는 프리스쿨 학생들이 니커슨 레터를 손에 들고 모두들 행복하게 사립학교를 찾아가면 좋으련만 뉴욕시 장애특수사립학교는 그 전체 정원이 전체 학년을 통틀어 2,484명으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2,500명의 장애 프리스쿨 학생들은 사립학교에 입학할 자리가 없으면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로 자신들의 무능함을 궁여직책으로 넘기기 위해 시교육청이 니커슨 레터를 남발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이 모두 사립학교에 입학한다 하더라도 2,500여명에 달하는 학생의 등록금을 시교육청이 모두 부담하겠다고 하는 의도였는지도 궁금하다. 블라지오 시공익옹호관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2,500여명 가운데 50%가 사립학교에 입학한다고 가정할 때 시교육청은 무려 4,360만달러를 이들의 등록금으로 지출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이들이 공립학교에 적절히 배정되었을 때보다 무려 1,000만 달러의 비용부담이 추가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뉴욕시 재정이 어려워 언론보도를 통해 공립학교 교사의 대거 해고 계획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 필자가 일하는 학교에서도 항시 긴장감이 돌고 있는 마당에 이처럼 시교육청이 장애아동에게 적절한 공립학교도 제때 제대로 추천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실수로 세금이 마구 낭비가 되어서가 되겠는가?

장애아를 키우는 것 자체로도 부모들은 외롭고 힘이 든다. 이러한 시교육청의 무능함은 외롭고 힘든 장애아 부모의 줄다리기를 더욱더 휘청이게 하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혼자의 세계에 빠져있는 아들 에반이를 끊임없이 자극하여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게 하는데도 모자란 내 시간을 새로 부임한 시교육감의 특수교육에 대한 행보를 감시하는데 써야하는 것이 참으로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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