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곧잘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옳고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셔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고 우기다가 결국 코가 깨지지 않는가. 웃기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싸구려 꿈에서 빨리 깨어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
하나님은 결단코 공평하신 분이 아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하나님을 나만의 하나님으로 만드는 우매한 생각인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불공평하신 분임을 먼저 깨닫기 바란다.
래리 도브라는 미국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가 있었다. 그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팀에 소속되어 처음 출전하는 날은 야구장이 초만원이었다. 최초의 흑인이라는 사실에 감동한 흑인들과 흑인인 주제에 얼마나 잘 하겠나 싶어 몰려 든 백인들로 스탠드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첫 타석에 들어 간 도비는 보기 좋게 삼진 아웃으로 물러났다. 그 다음 타자는 이 팀의 최고 강타자며 인기 절정인 백인 선수 죠 골든이었다. 관중들은 장내가 떠나가라 환호했다. 그가 멋진 한 방을 날려 흑인 선수 도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그 역시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을 먹고 래리 도브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피부가 희다고 자기 마음대로 안타나 홈런을 날리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 셈이었다.
관중들은 그때 속고 있었다. 백인과 흑인이 똑같이 홈런을 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공평하시다면 천신만고 끝에 야구선수가 된 흑인 도브가 홈런을 쳤어야 마땅했다.
도브는 하나님의 불공평에 이를 깨물고 절치부심, 마침내 죠 골든을 뛰어넘는 야구선수로 기록되었고 부동의 4번 타자가 되었다. 불공평한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이 역사의 장을 넘겼음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진정한 공평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억울해 한다. 어찌하여 나에게만 이런 재앙이, 이런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가 한탄한다. 그러나 속상하기 전에 먼저 그 실패와 고통 안에 도사린 하나님의 불공평한 의도를 알아차려야 한다.
옛날 할머니는 손자가 무릎이라도 다치고 돌아오면 이렇게 물었다. “얘, 너 혹시 어제 지나가는 거지를 놀리지 않았니?” 아니라고 대답하면 다시 묻는다. “그러면 어제 친구와 싸우다가 코피라도 터진 거냐?” 계속해서 무언가 오늘 넘어진 원인을 찾으려 애를 쓴다. 무릎을 다치고 손가락이라도 삔 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무언가 옳지 못한 일의 결과라는 발상이었다.
이런 인과응보적인 생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으로부터의 공평성을 보장 받으려 한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얘기를 통해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죽은 후에 거지는 천국으로 갔고 부자는 지옥으로 갔다는 대목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이 비유야말로 불공평한 하나님을 잘 설명하는 말씀이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많이 받아 호사를 누렸잖니, 그래서 너는 지옥이야!” 참으로 탁월한 불공평이다. 부자는 자기가 부자였음을 통탄했어야 했다. “차라리 거지처럼 살게 하시지, 왜 나를 부자로 만들었습니까?” 부자는 살아생전 주어진 재물의 불공평성을 간과했다.
지금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가. 그 짐은 불공평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주의 깊게 보신다는 증거다. 불공평의 뒷면을 보아야 한다. 지금 힘들게 사는 내 모습을 보시고도 여전히 무심한 하나님의 마음을 믿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불공평을 은혜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을 가슴에 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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