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에

2011-06-2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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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평일 버지니아

6월의 마지막 주, 이제 계절은 마지막 절정의 성하를 향해서 숨 가쁘게 치닫고 있다.
절정은 산의 맨 꼭대기, 정상을 의미한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곧 내려감을 서둘러야 하듯이 성하는 여름의 끝이요, 또 다른 계절의 시작에 대한 채비를 의미한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시인이 이 시를 구상하고 썼을 때는 시기적으로 바로 이맘 때였을 것이다.
그는 절정(絶頂) 이라는 시에서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하며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일제 암흑기의 절망을 노래하기도 했었다.
나는 이육사의 시 ‘절정’과 ‘청포도’를 번갈아 읽으면서 절망의 끝과 희망의 끝을 동시에 체험한다. 누구의 말처럼 꿈은 실망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절망이 깊을수록 우리들은 더 높은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나는 며칠 전 주위 문우들이 쓴 두 편의 글을 이메일로 받아 보았다. 이육사가 청포 입은 손님을 기다리며 준비해 두었던 하이얀 모시 수건을 붉은 피로 물들게 했던 6.25를 회상하는 글이었다.
한 분은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허전한 마음과 허기를 고백했고, 한 분은 6.25를 더 이상 동란이라고 부르지 말고 남북전쟁으로 불러야하며 그 전쟁을 민족의 자신감과 도전에 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나는 6.25라는 말 자체를 잊고 살아온 지가 오래된 사람이다. 그래서 6.25에 대한 특별한 감회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6.25가 앗아간 나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은 평생 동안 마음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나에게는 어떠한 이념이나, 철학, 종교도 한 인간의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원수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 형제자매라도 원수라고 되풀이해서 수백 번을 귀로 듣고 입으로 부르다 보면 원수로 변해 버린다.
나는 어린 초등학교시절부터 수백 번 이상을 불렀던 6.25의 노래를 아직까지 머리 속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이 나이에 불러도 머리끝까지 소름이 끼쳐오는 이런 잔인한 가사의 노래를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부를 수 있었을까?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다.
그 전쟁으로 인해서 우리들은 이미 200만이 넘는 사랑하는 부모, 형제자매들의 목숨을 잃었다. 이제는 어떠한 지상의 명분으로도 더 이상의 사랑하는 목숨들을 잃게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이 꿈꾸며 기다리는 조국의 통일은 사랑과 평화가 넘쳐흐르는 행복한 통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는 절망의 ‘절정’의 시를 접어두고 ‘청포도’ 시를 읽으면서 흰 돛단배를 타고 고달픈 몸으로 곱게 찾아 올 청포도 익어가는 7월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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