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낙동강은 말이 없다

2011-06-26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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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규환/공군전우회 워싱턴지회 회장

6.25전쟁 한국판 게티즈버그 전투.
1950년 6월28일 새벽 서울 미아리 방어가 무너지고 잔여 국군이 패퇴함으로써 인민군 탱크부대는 무혈로 서울을 일거에 점령했다. 7월 중순 승전보에 도취된 김일성은 황홀한 서울휴식을 만끽한 채 곧바로 수안보로 행차, 최고 사령관 야전 작전회의를 소집했다. 휘하 김무성, 김책, 최현, 오극열, 박성철 등에게 8.15에는 부산에서 적화통일 승전 축하 퍼레이드를 할 것이라고 독전에 광분했다.
그날 저녁 광란의 전승 파티가 주지육림으로 마적당 두목들은 서울에서 납치해 온 유명 배우 연예인들을 무참하게 유린하며 짓밟았다. 서울서 강제 징집된 앳된 여고생 의용군들은 집단으로 야수들에게 희생당했고 이들은 이후 전선으로 끌려가 간호 정탐 등 총받이로 사라져갔다
7월 말에는 최후 공방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산하를 피로 물들게 했다. 포항여고에서는 17세 전후의 학도병들이 육탄전으로 꽃다운 인생을 조국을 위해 초개같이 버려 호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해 갔다. 영천 시가전에 막 징집된 신병 일단이 미군 탱크 호위로 가가호호를 찾아다니며 인민군 패잔병과 격투를 하며 소탕해 전진하고 미군 병사가 뒤를 따랐다.
영천이 떨어지면 대구가 위험 또 다른 패퇴로 미군 철수가 논의된 시기였다.
9월 초에 최후의 전쟁승패를 가누는 운명의 결전이 닥쳤다. 전 전선에서 쌍방이 팽팽히 맞서는 극한의 대치 속에 치명적인 야간 기습공격이 의외의 곳, 낙동강 인접 밀양 길목인 영산으로 인민군 1개 연대가 방위선을 돌파 기습 공격해 왔다. 밀양이 함락되면 부산까지 위기에 빠져 패망이 닥쳐 온 것이다.
워커 장군은 미군 철수를 전제로 밀양과 울산을 잇는 데이빗슨 라인을 설치하고 일본에 후퇴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 워커 장군은 정찰기 L-4에 탑승해 최저고도 비행으로 직접 작전 지휘를 했다. 적의 총탄이 기체를 벌집을 만들었으나 적진 상공을 떠나지 않아 사기충천한 병사들은 진지를 끝까지 사수함으로 구원 병력이 도착, 신형 탱크가 부산항에 하역한 즉시 출동했다.
미 공군의 최다 지원으로 적은 패퇴해 강을 건너 집단으로 도망했다. 공군기의 집중 포격으로 강 한가운데 도강 중인 패잔병들은 몰살당해 강물은 피로 물들고 아비규한의 전쟁은 끝났다.
이를 두고 한국판 게티즈버그 전투라 했고 데이빗슨 라인은 단겔크 패퇴의 마지노선이라 했다.
한민족의 핏줄 낙동강은 오늘도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대역사 5대강 사업을 기대하듯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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