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25 전쟁

2011-06-2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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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1.4 후퇴로 부산서 살던 시절, 시장에 가면 특이한 열쇠 장사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조끼 옷을 입고, 그 옷에 열쇠를 주렁주렁 달고 시장 통을 누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그 자물통을 보고 골라서 사도록 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제 6.25와 휴전 협정일이 다가온다. 그러면 북한에서는 승리의 전쟁 기념이라며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질 것이고, 높은 사열대에서는 김정일이 박수를 치고, 그 옆에는 몇 명의 군 장성이 경례를 하면서 서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군 장성의 군복에 붙어있는 훈장들이 그들의 눈빛, 표정을 보고 있는 나에게는 꼭 열쇠장사 조끼를 연상하게 하며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한편 미국에 교포들이 모여 사는 여러 도시에서는 재향 군인회, 무슨 해병대회 또는 무슨 참전 용사회이다 하면서 여러 단체들이 합동 기념식을 갖고, 결의문 채택, 무명용사 기념탑에 헌화, 미군 참전용사 만찬 초대, 6.25 기념 강연회 등등의 행사를 작년에도 가졌고, 금년에도 가질 것이며 또 내년에도 가질 것 같다. 뜻 있는 행사이다.
그러나 이렇게 남북한의 반복 되는 행사를 지켜보면서 이제는 근본적으로 6.25 전쟁이 우리에게 끼친 진정한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그 가치를 되 새겨 보는 것도 바람직 할 것 같다.
나는 우선 명칭을 ‘6.25 동란’에서 ‘6.25 전쟁’으로 바꿔 부르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실 나는 그 놈의 난(亂)이란 단어가 아주 싫고, 한국 역사에서 모든 백성들에게 아주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인식이다.
고려시대 보수와 진보의 대결도 그저 ‘묘청의 난,’ 왕조에 반기를 든 것도 그저 ‘이괄의 난’‘이시애의 난,’ 배고파서 못 살겠다고 일어선 농민 봉기도 그저 ‘동학 난,’ 정부의 푸대접으로 군인들이 항의를 해도 그저 ‘임오군란,’ 몇 십 만의 왜놈들이 쳐들어 와도 그저 ‘임진왜란,’ 떼놈들이 쳐들어 와 왕이 엎드려 절하고 항복해도 그저 ‘병자호란’이다.
그러면서 그 난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따지기 전에 우선 보따리 싸 들고 발걸음이 뜸한 산골짜기로 피난을 가곤 했다. 그래서 그러한 맥락에서 6.25 도 처음에는 ‘6.25 동란’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6.25가 미국의 개입으로 타의가 되었던, 산속으로 피란을 가 봐야 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시대가 되였던지 간에 피난을 안 가고 모든 젊은이들이 전쟁에 총을 들고 참전을 했다. 그리고 최소한 전쟁에서 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전쟁하면 꼭 죽고, 짓밟히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만이 아니고, 때로는 싸워서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그러면서 6.25는 난리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으리라.
많은 학자들이 오늘날 한국 번영은 전쟁 중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교육에 대한 관심, 또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정책 등이 근본 원인이 됐다고 한다. 나는 국민들이 6.25 전쟁을 통해서 무언가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과 도전 정신을 배웠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을 되새기는 것이 진정한 6.25 전쟁의 참 가치를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6.25 전쟁으로 우리 집이 풍비박산이 안 되었으면 이 먼 미국 땅으로 이민을 올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제 6.25를 맞이하여 반복되는 기념행사의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또한 마무리 짓지 못한 6.25 전쟁을 전쟁이란 수단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해결하는 도전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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