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치매 할머니의 베개

2011-06-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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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할머니는 약을 잡수셔도 증세가 자꾸 나빠지셨다.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셔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셨다. 바로 옆방에 주무시던 엄마는 다른 가족들이 깰까봐 놀라서 할머니 방으로 달려가면 할머니 옷은 어느새 소변으로 젖어있고 쾌쾌한 냄새는 온 집안에 진동하고 엄마 목소리는 목욕탕에서 물소리와 합쳐졌다. 그렇게 우리 집 하루는 시작하는 것이었다.

8개월 동안 엄마는 삼촌과 고모들이 모두 할머니를 모시지 못하겠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할머니 병간호를 하셨다. 병원에서 모시고온 후 얼마간은 심하지 않으셨는데, 요즘은 가끔 짜증이 나시는지 할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는 것이 어쩔까 생각 중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다가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누구도 자기만큼 정성껏 돌봐드릴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말씀 하신다.

할머니는 멀쩡하게 화장실을 가시다가도 가끔 방바닥에 실수를 하시고 방안을 빙빙 돌기도 하신다. 아침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실랑이는 끝이 없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목욕탕을 들락거리는 엄마도 가끔은 지치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친척들이 오면 허구 헌 날 ‘어미가 밥을 굶긴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데, 우습게도 이 말을 친척들이 반쯤은 믿는 듯한 얼굴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하도 기가 차 할 말이 없다며 치매에 걸린 사람을 직접 모시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다가 엄마의 허리 병이 도져서 물리치료를 받으시느라 할머니를 큰집에 2주일동안 가계시게 했다. 며칠 후 병원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엄마는 할머니가 궁금하셔서 큰집에 들리셨다고 한다. “그 큰집에 할머니 계신 방은 바깥에서 방문 고리에 숟가락이 꽂혀있고 문을 여니 방 한쪽에 요강이 놓여있고 발목에는 요강이 닿을 정도의 거리만 움직일 수 있게 끈이 묶여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큰 그릇에는 먹다 남은 밥과 숟가락이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그 사이 몸무게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아파서 그만 엉엉 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눈빛으로 무엇인가를 얘기하시는 것 같아서 무조건 모시고 왔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큰 어머니는 친구들 모임이 있어서 외출했었다고 한다. 나는 그날처럼 엄마가 화가 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가 무척 아끼고 애지중지 하는 베개가 하나 있었다. 누구도 손을 못 대게 하시는데 어쩌다 내가 만지면 알 수 없는 욕을 막 하시곤 했다. 거의 일 년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사람들이 베개를 태우려 뜯었는데 그 속에 한 장의 편지와 할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져왔다는 은비녀 그리고 그동안 짬짬이 모은 돈이 조금 있었다.

편지를 읽는 엄마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미야, 미안하다. 내가 너에게 못할 짓만 하고 가는 구나. 네가 나 때문에 고생한 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단다. 너의 예쁜 마음은 내가 잘 알고 있단다. 며늘아, 사랑한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 내가 잠시 정신이 들어 이 편지를 쓴단다.”

지금도 엄마는 울적해지면 장롱 옷장 구석에서 꺼내보는 할머니 편지와 은비녀. 이제는 정말 엄마의 보물이 되어 오늘도 장속으로 들어간다.


이혜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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