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생원수(怨讐)가 부부라는데…

2011-06-1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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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시골 노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퀴즈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게임 중에서 낱말 맞추기가 참가자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었는데 마침 여든을 넘기신 어느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라는 글자판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할머니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 글자판에 적혀있는 낱말을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대답하는 방법을 설명해 나가면서 그 뜻을 할머니에게 묻고 있었다.
“우리처럼 이렇게 부부가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을 뭐라고 하지?” “……” 할머니에게서 얼른 답이 나오지 않자 할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면서 할머니에게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다.
“아니 우리처럼 같이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는 부부를 왜 이것이라고 하잖아?”
할머니는 그제서야 답을 알겠다는 듯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힘차게 대답을 했다. “웬수(원수)!”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약간 당황한 할아버지는 진땀을 흘리며 다시 단어의 뜻을 설명하면서 “아니 그것 말고 네 글자, 네 글자로 무엇이라고 하지? 하고 다급하게 묻자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할머니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평생웬수(平生怨讐)!”
부부란 전생의 웬수(원수), 자식은 전생의 빚쟁이라고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러나 전생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니 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기혼부부들의 이혼율이 47.4%로써 미국의 51%, 스웨덴의 48%에 이어서 OECD 국가 중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자료에 나타난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일견 부부가 ‘원수’란 말이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수’라고는 하지만 시작부터 그런 관계로 맺어진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다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났고 살다보니 그렇게 변화가 되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이 있다. 청춘남녀가 처음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렀을 때 그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나고 자랐으며 가정 교육의 형태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물론 가정교육의 내용이야 엇비슷했었다고는 해도 관점이나 방법이 달랐을 수도 있다. 자연히 두 사람간의 ‘다름’을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과 방법이 서툴러서 마음이 상하고 앙금이 생겨 두 사람 간에 틈이 생기는 악순환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원수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처음부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존심 싸움을 하다보면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경에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기에 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했더라면 그저 사랑 싸움으로 끝났을 일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해 원수의 길로 접어들었을 수도 있다.
싸우면서 크는 것은 아이들만의 일이 아니다. 어른들도 부부싸움을 해 가면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다. 한 평생 속 썩여 온 남편이지만 그래도 내 낭군이라는 애증의 표현인 평생 웬수…. 열감기라도 호되게 앓을라치면 달려가 약을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웬수 밖엔 없다.
젊어서는 연인이어서 손을 잡고 중년에는 친구가 되어 손을 잡으며 늙어서는 서로 아픈 곳을 보듬어 주어야 하는 손길이 필요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부부는 서로의 손길을 원하는 평생원수(平生願手)이며, 그런 모습이 바로 부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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