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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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 캠프

2011-06-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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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아들 가족과 함께 야영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일년에 한번씩 여름에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연례행사이다. 이웃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칸막이를 무너뜨리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야영캠프 운동장에서는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서 단 하루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운동장 코너에서는 대형 스크린으로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 3’가 상영되고 있었다. 컴퓨터 디지털로 기술적인 완성도, 재미와 감동으로 이어지는 작품구성으로 영화평론가들로부터 21세기 애니메이션 영화의 분수령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앤디가 훌쩍 자라서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어 집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앤디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카우보이 인형 우디와 우주 영웅 버즈 등 장난감들과의 슬픈 결별이 다가온다.

앤디의 어머니는 박스에 장난감을 담아 어린이 놀이방에 기증해 버린다. 놀이방의 난폭한 어린이들과 다른 장난감들에게 모진 학대를 받던 장난감들은 똘똘 뭉친 군단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하여 앤디 곁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모험담이다.


만화영화에서 집을 떠나는 앤디가 부모와의 이별보다는 장난감과의 추억이 더 깊은 것은 미국의 핵가족 풍경이다.

바비큐 그릴에서 고기가 타는 냄새 나고, 풀밭에서는 아이들이 축구공을 가지고 뛰어노는 캠핑 운동장은 여름의 신록처럼 젊음과 열정이 가득하다. 나는 옆자리 텐트의 백인 젊은 엄마와 풀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남편은 더 얇아진 아이패드로 손끝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테크놀로지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었다. 아이들 역시 아이폰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이 아이폰을 가지고 놀고 있으면 피곤한 그녀에게 달콤한 휴식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마법 같은 전자 베이비시터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제 디지털 시대의 기계는 인간의 손가락과 부착된 신체의 분신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아이들 손에서 휴대용 기계들을 뺏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녀에게 “아이들이 도망갈 구멍이 어딜까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나의 넋두리에 미소만 지을 뿐이다. 테크놀로지 진화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운 모양이다.

캠핑 운동장에 나이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4인용 핵가족 캠핑텐트 공간에 조부모는 편승할 수가 없다. 캠핑 운동장의 핵가족들의 부모는 베이비붐 시대다. 수명이 길어져 거대한 인구 층으로 늘어나고 있는 베이비붐시대는 자식의 삶에 끼어들지 않는다. 머지않아 텐트 속의 아이들도 곧 어른이 되어 부모를 밖으로 밀어낼 것이다.

미 주류사회의 개인주의 산물인 핵가족화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박민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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