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계단에서 낙상하는 순간의 사고로 척추를 다친 후, 허리를 펴지 못해 보행이 자유롭지 못한 환자노릇을 하게 되었다. ‘건강의 봄날’은 갔다는 상실감, 좌절감도 따랐지만 극복의 발 돋음을 위해 일상의 해야 할 일들을 접었고, 글 쓰는 일 조차 외면한 채 허리 회복을 위해 오로지 운동과 치료에만 전념을 했다.
그런 와중에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다. 서울에 체류하는 동안 새로운 광경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을 충분히 가 졌다.
심혼을 기울이며 빛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예술인들, 문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이다.
서울의 문인들은 밤새 불 밝히며 피를 토해내듯 훌륭한 역작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슬을 진주로 바꾸는 일, 햇빛에 스러져 버릴 이슬방울을 언어로 형상화하며 진주 같은 보석으로 만든 작품들로 사람의 마음 속 깊이 빛을 보내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작품을 읽으며 감동 했으나 침묵했다. 감동의 극치는 침묵일 뿐, 다른 찬사의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사동 거리에는 재능과 불타는 정열과 강한 의욕의 화가들의 그림 전시회가 사방에서 열려있었고, 대학로는 물론 예술 극장마다 연극공연이 한창이었는데, 주연 배역을 맡은 노장들은 신명을 아끼지 않고 몰입하는 명품 공연을 보였다. 70순의 나이를 잊은 그들은 개성을 발 휘하며 강한 정열을 가지고 인생을 뜨 겁게, 멋지게 살고 있는 현역들이었고 자기 일에 생명을 완전 연소시키고 있 었다.
며칠 전 우연히 돌린 한국 TV방송에서 3살 때 아버지에게 버려져 5살 어린 나이에 험한 세상을 혼자 힘으로 살아온 22살의 불우한 청년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세파에 부딪친 과거와는 달리 맑고 귀여운 얼굴로 ‘넬라 판타지아’를 열창한 청년의 노래는 심사위원들은 물론 관객 모두에게 기립박수를 받으며 감동의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대책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는 그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음악이 좋아서 노동을 할 때도 쉬지 않고 노래 연습을 혼자서 했다고 했다. 노래를 할 때만큼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쁨이 있었다고 했다.
작가나 화가, 배우 또 그 청년의 공통점은 멈추면 녹이 슬어 빛을 잃는다는 것을 옴 몸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들을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 뼈를 깎는 노력은 고사하고, 이래서 저래서 못쓰고 멈추는 핑계를 앞세웠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는가, 문학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도하듯이 해야 한다고.
이제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분발해야 할 것 같다. 멈추지 않고 녹슬지 않겠다는 각오로 창작 활동을 한다면 짧은 인생이 보다 영속적이 될 것이다.
요즘같이 가급적 편하게 유쾌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많은 세상에 무엇 때문에 피나는 각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고통 속에서 발아되는 작가들의 기쁨, 그들만이 아는 창작의 기쁨, 가슴으로 오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잠자는 영혼들을 흔들어 주는 따사로운 입김이 되는 그 기쁨이 가장 강하게 오래도록 빛이 되어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