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를 삼킨 파리

2011-06-0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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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별난 작은 오빠. 가끔 두뇌 회전이 너무 빨랐던지 초등학교 성적표에 “총명하나 잔머리를 굴림”이라는 담임 선생님의 의견이 쓰여 있기도 했다.
그런 오빠가 집에서 책임지고 있는 일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우리 집의 보물 제1호인 소의 꼴을 먹이는 일이었다. 소에게 꼴을 먹이는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소를 끌고 나가 풀이 많은 들판이나 언덕을 찾아다니면서 먹도록 하면 되었다. 나는 동생을 업고 소를 먹이러 다니는 오빠를 종종 따라나섰다.
별로 재미있는 놀이도 아닌 데 오빠에게 충성심을 발휘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오빠는 가끔 눈깔 사탕은 아니었지만 비과와 같은 사탕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사탕이 순전히 공짜는 아니었다. 가끔 오빠가 소를 먹이러 나온 다른 친구들과 서리를 하러 가면 나는 아주 유능한 목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했기에 주어진 보상이었다.
그 날도 오빠는 소를 몰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 근처로 향했다. 신작로의 윗길에 있는 그곳은 소나무가 빽빽하니 들어 서 있었다. 작은 소나무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그곳은 어린 아기의 살갗처럼 보드라운 풀들이 성깔 사나운 여름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은신처이기도 했다. 오빠는 작달막한 소나무에 고삐를 묶어 놓고 옆에 있는 넓적한 바위에 누워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낮잠 속으로 미끄러졌다. 난 업고 있던 동생을 내려 풀밭에 앉혀 놓고 신작로에서 주어 온 돌로 1인 2역 소꿉놀이를 하면서 간간히 소가 그 주변에서 풀을 잘 뜯어 먹고 있는지를 보았다.
한참을 놀다가 오빠를 흔들어 깨웠다. 오빠는 눈을 뜨더니 해가 기운 것을 보고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나도 정성스럽게 차렸던 상을 아깝지만 흩트려 버리고 동생을 들쳐 업었다. 소는 어지간히 풀을 뜯어 먹었는지 서서 계속 되새김질을 해댔다.
오빠는 소나무에 묶어 놓았던 고삐를 풀어서 소 엉덩이를 “이럇!” 하는 소리와 함께 힘껏 쳤다. 그러자 되새김질을 하고 있던 소가 깜짝 놀라 앞으로 퉁 튀어 나갔다. 그 찰나 내 눈에 뻥 뚫린 구멍 하나가 클로즈업 되어 들어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원래 소거시기에 저렇게 큰 구멍이 뚫어져 있었었나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도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 잠시 그 구멍을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옆에 있는 소나무로 눈길을 돌렸다. 여름 햇빛에 약간 지친 소나무 가지에 밤색 밧줄이 칭칭 감겨져 있었다. 그건 밧줄이 아니고 소의 꼬리였다! 꼬리는 빠졌지만 소가 죽은 것도 아니고 해서 엉킨 꼬리를 풀어서 오빠는 어깨에 걸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논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탈곡하고 남은 볏단과 콩깍지 등을 삶으면서 오늘 소에게 꼴을 잘 먹였는지를 물었다. 작은 오빠는 태연스럽게 배불리 먹였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여물을 들고 문간 옆에 있는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부드럽고 애정 어린 목소리로 소의 여물을 먹이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더니 뚝 끊어졌다. “이놈아, 이거이 뭔 일이여!” 하는 아버지의 숨 넘어가는 외침을 듣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외침과 함께 외양간에서 후다닥 튀어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튀는 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달빛 속으로 사라졌다.
그 소를 잘 키워서 농사일도 거들게 하고 새끼도 치게 해서 오글오글하니 많은 자식들의 학자금으로 쓰겠다던 것이 아버지의 꿈이었다. 꼬리가 없는 소는 파리를 좇지 못해 결국은 죽게 된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의 꿈이었던 소는 농사일도 못 거들고 새끼도 못 치고 도살장으로 헐값에 팔려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소가 팔려가던 날 아침, 아버지의 눈도 소의 눈처럼 벌개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를 어루만지고 있던 아버지의 목울대가 불뚝 올라오더니 툭 떨어졌다. 아버지의 손길을 느낀 소는 고개를 돌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대문을 나서는 소의 엉덩이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똥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휘익 날아와 찰싹 달라붙었다. 꼬리가 없는 소는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터벅터벅 대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성애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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