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업/ 호레이스 글리리 고교 9학년 박호준 군
2011-06-06 (월)
미국 땅에 한국의 민속촌이나 민속박물관을 만들어 세계 속의 한국을 담아내고 싶은 꿈을 오랫동안 간직해왔다는 박호준(15·호레이스 그릴리 고교 9학년)군은 스스로를 ‘애늙은이’라고 부르는데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라는 조부모에서 부모로 이어진 집안의 가르침이 이미 몸에 익숙히 배여 있어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행동도 이유지만 또래보다 일찍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고 깊어진 것도 한 몫 한다. 반도체 분야에 근무하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한국에서 태어난 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싱가포르에서 보냈고 이후 서부 실리콘밸리를 거쳐 다시 뉴욕으로 터를 옮긴지 이제 2년. 어린 나이에 서로 다른 환경과 배경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을 두루 만나다보니 세상에 대한 깨달음도 깊어졌고 덕분에 생각도 어른스러워지게 됐으며 한국 전통 민속박물관 건립의 꿈도 이런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됐다고.
일본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이든 정착하는 지역마다 벚꽃을 심으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익숙한 반면 미국의 한인 이민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아직까지 한국의 전통문화를 손쉽게 접할 수 없는 이 땅의 현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앞선단다. 옛 조상들의 생활 속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전통 문화재와 공예품, 작은 생활용품까지 무엇 하나 자신의 눈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민속박물관은 건립만이 꿈이 아니라 연 만들기, 제기차기 등 민속체험 공간도 마련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선보이는 운영계획까지 꿈의 실현을 위해 구체화하는 작업에도 열심이다. 최신 유행가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하고 유명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기보다는 철학가들의 사상을 공부하는데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취미 이상으로 즐기고 있는 사진 촬영도 칼라사진보다는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것도 그 나이 또래에서는 흔치 않은 모습이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문학세계에 빠져 지내는 요즘은 틈날 때마다 자신만의 희곡을 집필하는 일에도 몰두하고 있다. 단기목표로는 올해 안에 원고를 마무리해 책으로 출간하는 것.
민속박물관 건립과 더불어 대학에서는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뒤 인권변호사와 작가로도 활동하겠다는 계획이다. 아무런 기본기도 없이 무작정 박물관을 세우겠다고 나서면 후원자 모집에 어려움이 클 것이란 우려가 크기 때문에 자신을 먼저 가꾸고 다듬는 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각오에서다. 뚜렷한 이목구비로 어린 시절 한국에서 3년간 CF와 잡지 모델은 물론, 드라마와 패션쇼 무대까지 오르며 두루 섭렵했지만 다시 기회가 오더라도 연예계에 복귀하고픈 생각은 없단다. 태권도 1단의 유단자이자 학교 수영팀 선수로 각종 대회에 출전해 화려한 수상 경력도 갖고 있으며 밴드부 튜바 연주자와 크로스컨트리 육상팀 선수로도 활약하고 있다.
한국어 학습의 중요성도 일찌감치 깨달아 한국어 이해력을 돕는 한문 공부까지 스스로 찾아서 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정부가 실시하는 한국어능력시험에서는 고급과정을 통과했고 지난해에는 SAT II 한국어시험에도 응시해 만점 성적을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 때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학교에서는 전과목 A학점의 우등생이기도 하다. 세계 속의 한국을 꿈꾸는 아름다운 청년이 되고프다는 박군은 박용·김금희씨 부부의 2남 중 첫째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