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시장 골목

2011-06-04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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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호 시인, MD

우리 시장 사람들 목숨 줄기는
가을볕에 시래기처럼 오그라들고 있다.
엊저녁 마신 막걸리 냄새 식도 타고 역류하며
서릿발 같은 입김으로 팔 물건 내어 놓는다.
아직 남은 취기 쓴맛은 목구멍까지 기어올라
눈꺼풀 하늘에 걸려 무말랭이처럼 붙어 있다.

아침 금은방 시계추는 억지로 여유를 보인다.
수북이 쌓인 과일상자 알몸 내어 보인 부끄러움
흥정 붙이는 햇살에 익어 빨갛게 옷을 벗는다.
어전에 꼴뚜기와 갈치, 고등어 일렬로 세워놓고
갯벌냄새 가득한 행주치마에 듬뿍 담아
비린내 골목가득 풀어놓고 푸짐히 담아준다.
미나리 빛깔의 봄 깔고 앉은 파뿌리 노파
만원도 안 되는 전 재산 펼쳐놓고
낡은 호미처럼 구부린 허리 길바닥에 무너진다.

전생의 가면 벗은 정육점 냉장고 살코기
입맛 핑계로 만져보는 주머니 사정
무서운 가격에 놀라 저울에서 가늠질 한다.
어디서 나타난 깡마른 눈빛 사내
트럭 뒤에 쪼그려 앉아 숨 가쁘게 토악질 한다.
물건 값에 속아난 더러움 때문인가
목구멍에 검지 쑤셔 넣어 뒤집고 있다.

가위소리 동여 맨 신들린 엿장수 춤.
뻥튀기에서 뿜어낸 송곳같은 고함소리.
스피커에서 튕겨오는 싸구려 외침소리.
생존경쟁 흘러간 위로 우글거리는 아침햇빛.
시장 일대는 시들은 고향 빛깔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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