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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자폐아 양육기 ④ 발달장애아와 교사

2011-06-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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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희 교사(뉴커머스고교)

필자는 머리가 굵은 고교생을 가르치는 교육자이기에 이러한 고민에 직면하지 않지만 아직도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학교로 오거나 낑낑 대며 스쿨버스에 오르는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교육자에게는 발달 장애를 가진 듯한 아이의 부모들이 자녀의 다름을 인식하지 못한 듯 할 때, 그들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일반 아이들과 다르다는 우려를 귀띔해줘야 할 때면 뒷머리가 종일 뻐근하게 당길 정도로 고민이 된다는 얘기를 수차례 들은 적이 있다.

발달장애가 있다면 고교생쯤 되면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명백히 보이고,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그만큼 나이가 차게 되면 부모로서는 아이의 장애사실을 일찌감치 인정했을 것이고,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를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고 있을 무렵이기에 교사로서는 부모와 아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가 한결 편하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는 완전 다른 이야기다.


필자처럼 아예 학교를 들어가는 첫날부터 아이의 손을 붙잡고 "우리 아이에게 자폐가 있으니 이러저러한 것들을 선생님과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모가 오면 좋겠지만 상당수는 아이의 발달장애 사실을 모르거나 장애를 아는 듯해도 교사에게는 이를 함구하기에 교실에서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팔팔 끓는 물에 쏙 들어가 버린 멸치처럼 온 몸의 온도가 마구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이가 어릴수록 발달장애라는 사실이 제대로 다른 이에게 드러나 보이지 않고 그로 인해 아이에게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꼭 자신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만큼 가슴 아픈 부모들이기에 아이의 발달장애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마치 교사 스스로가 부모에게 사형선고를 하는 듯 쉽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두렵기까지 한 일이어서 그들이 두통까지 느끼며 고민하는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교사의 오랜 경험으로 한 반에서 아이가 여러 아이들과 섞여 있을 때 아이가 다른 점이 눈에 선연하게 들어와 아이의 다름을 알려주고만 싶은데도 아이가 어리기에 괜히 부모한테 가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부모가 큰 충격에 빠지는 것을 보거나 자신의 아이도 아니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고 오히려 역정을 내며 학교를 바꾸겠다고 하는 부모들 때문에 상처를 적지 않게 받은 교사들이 주변에 꽤 여럿 있다. 이러한 상처를 알기에 아예 처음부터 부모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주저하는 교사들도 상당수다.

초·중등교육법의 뼈대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랄프 타일러는 ‘가르침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서비스이기에 가르침은 사명인 것이다(Teaching, is not just a job. It is a human service, and it must be thought of as a mission)’라고 했다. 교사에게 거창하게 부담스러운 말인가? 하지만 필자는 그의 말을 참으로 좋아한다.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필자에게는 1시간의 수업을 꿰어 맞추는데 내 가르침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1시간 수업에서 빚어지는 지식의 전수와 학생과의 끈끈한 교감(Rapport)이 그들의 인생에 어떻게든지 반영되기를 매순간 소망하며 교실에 들어서기에 나의 가르침은 직업이 아니라 사명인 것이다.

필자가 학생들이 성인이 되기 직전의 인생 반죽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면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라면 자신의 가르침이 아이의 인생이 막 빚어지는 시작에 놓여져 있지 않은가. 그들은 학생들의 인생 반죽을 처음으로 주물러 만들어나가는 절대적인 단계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충격 받을까봐 아니면 화를 내고 돌아설까봐 아이의 다름을 부모에게 말하기를 꺼려한다면 그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적절한 치료를 흘려버리게 하는 것이고 어릴 때의 치료가 절대적인 발달장애아들의 경우 그렇게 흘려버리는 치료는 그들의 나머지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초석을 다지지 못해 그 장애가 더욱 깊어지게 마련이며 아이의 인생 반죽은 제대로 빚어지지도 못한 채 벌써 딱딱하게 굳어져버리는 셈인 것이다.

장애아를 둔 엄마로서 그리고 또한 교사로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너무나도 훌륭한 교사들에게 꼭 부탁한다. 주저하지 말고 힘들어도 아이가 다르면 다르다고 부모에게 이야기를 해주기를. 그들이 화를 내고 눈물을 지을지라도 그것은 한순간일 뿐 부모들은 당신으로 인해 아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를 찾아 나서는데 보다 적극적인 부모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필자는 교사이게 안다. 부모에게 아이의 좋지 않은 것을 말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하지만 당신들은 교사이며 가르침은 사명이다.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많이 보입니다. 적절한 검사를 받길 권장합니다"는 한마디를 한 순간도 망설이지 말고 건네주어라. 더불어 사명감을 지닌 교사들에게 거듭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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