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사회가 커지면서 크고 작은 행사들이 많다. 이미 다민족사회 한복판에 들어 앉아 있고, 그들과 교호하면서 살아가고, 또한 결혼과 가정생활도 하고 있으니 주어진 환경자체가 배타적일 수가 없다.
문화인류학의 범주에 속하는 소위 문화상대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무색해지는 현장이 미주한인 동포사회이다.
그래서 한인사회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전통 한국예술 공연이다. 대표적인 게 풍물이요, 사물놀이, 판소리, 각종 춤들이 있다. 그걸 빼 버리면 한인행사라는 특별함이 없어져버려서 주체성이 없는 맥 빠진 행사이기 십상이다.
지난 22일 저녁 조지 메이슨대학 해리스 극장에서 뜻 깊은 발표회가 있었다.
300여 명의 관객이 숨죽이고 관람했던 그 한 시간 반은 많은 분들에게 권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너무나 크다. 제1회 워싱턴 한국 전통공연협회 발표회가 그것이다.
가야금 소리가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한복 입고 노인네들 앞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를 그런 고리타분함 밖에 연상되지 않았던 그 소리가, 이 세상의 어느 악기가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 가야금 연주와 장구 박자에 실어 버선발이 보일 듯 말듯, 소매 끝이 날아오를 듯이 선녀옷차림으로 산조춤과 북춤이 어우러지고 나니, 귀에 익은 수준 높은 판소리 가락이 가슴 저변을 훑어 내린다.
잦아질듯 웅장한 소고와 일북으로 마냥 여리지만 않는 한국의 기상을 일신함으로써 민족전도의 당당함을 알렸다.
사물 중에서도 패거리를 간의 허리 역할을 하던 장구들로 이루어진 설장고 공연을 통해 같이 자리한 외국인들이 넋을 잃고 말았다. “원더풀 코리아."
`한국인의 기술과 끈기가 우연이 아니었구나’를 보여준 훌륭한 민간 외교였던 셈이다.
마지막을 장식했던 ‘아리랑’ 독창은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의미 이외에도 같이 참석한 객석에서 장탄식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민요, 우리의 예술, 우리의 문화가 이런 것이다. 우쭐한 선민의식을 갖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사실 문화를 접하고자 하면 해당 문화의 본고장을 방문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래야 제대로 보존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어려운 이민생활 속에서 우리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할 텐데, 이번 출연진들을 보면 모두 이 지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나누어 하던 분들이 쉽지 않는 조화를 이루니 이토록 훌륭한 ‘꺼리’를 창출했다는데 의의가 크다.
그것을 ‘장인정신’이라고도 하고 ‘고집’이라고도 하는 예술인들이 갖는 각자의 길을 융합하여 진정한 ‘프로’가 무엇인지, 한국민의 내면적 아름다움과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렸다는 것에 자부를 느낄 만하다.
바빠서 그랬던지, 몰라서 그랬던지 관람료 20불이 과다하지 않았음에도 15만이 넘는 한인사회에서 만석을 못이룬 아쉬움이 있고, 외국인 또한 참석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문은 무보다 강하다.’ 세계 정치외교의 중심이라고 하는 워싱턴에 이런 환상적인 팀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도 현지 영사관이나 대사관은 해야 할 일이 꽤나 있을 것으로 기대해도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