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어머니의 유언장

2011-05-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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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달러를 지난 10년 동안 당신의 고양이를 제 집에서 살게 해 준 고마움에 옆집 이웃인 메리씨에 대한 작은 정성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시어머니가 지난 해 8월 93세의 연세로 돌아가셨다. 시아버지가 20여 년 전 돌아가신 후 버클리의 덩그러니 큰 집에서 혼자 사셨다.

동물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집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들을 돌보면서 유달리 고양이한테 정을 주었는데 그런 사랑을 진즉 훔쳐본(?) 옆집 고양이가 10여 년 전 어머니 집으로 와서 아예 눌러 앉아버렸다. 소속은 분명히 옆집 고양이였지만 그날부터 어머니 집에서 살다시피 한 것이었다.

혼자 사시는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버린 고양이 때문에 어머니는 외로움을 많이 달랠 수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옆집 사람한테 늘 미안해하였다. 그렇게 고양이는 어머니 집에서 10 년을 살다가 1년 먼저 죽었는데 어머니는 이웃인 메리씨한테 그동안 고마웠노라고 3,000달러를 드리고 싶다고 유언장에 적어놓은 것이다.


시어머니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셨다. 둘째 아들은 병에 걸려 10여 년 전에 먼저 저 세상으로 갔고 이상하게도 딸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큰아들인 남편을 특히 믿고 의지하였고 남편 역시 무척 효자였지만 혼자 사시는 적적함을 달래주는 데는 아마도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3,000달러를 옆집 메리씨한테 어머니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돈이라고 갖다 드리자 남의 고양이를 잘 봐주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며 미안해했다.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1,000달러를 뒷집 이웃인 수잔씨한테 드립니다. 당신은 나이도 젊은데 늙은 나를 잘 이해해 주고 혼자 사는 노인네라 혹시 적적할까 수시로 드나들며 말 상대도 해준 그대의 고마움을 잊지 못합니다.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목공일을 배워 연습용으로 해본다는 이유를 대면서 이층에서 내려올 때 넘어지지 않게 손수 핸드레일까지 달아준 그 마음씨를 기억합니다. 아주. 작은 정성이지만 내 죽은 이후라도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3,000달러를 1년에 한 번씩 나를 찾아와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동고동락 하면서 친구로 지내주었던 앤씨 그대에게 나의 우정의 표시로 드립니다.” 시어머니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혹은 신세를 끼친 사람을 잊지 않고 그 마음을 기억을 하였다. 앤과 시어머니는 쇼핑도 같이 가고 음식을 같이 해먹고 옛날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는데 이번에 어머니 임종을 마지막까지 지킨 사람도 이분이었다.

유달리 섬세하시고 아름다우셨던 시어머니는 작은 돈이지만 당신의 마음속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던 동물보호국 등 여러 기관과 이웃에 돈을 보내달라고 돌아가시기 전에 정성스레 유언장을 작성해 놓으셨다.

수 십 년 동안 어머니가 사시던 집이 지난 주에 팔리자 남편은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흔적이라도 느껴보고 온다면서 한참이나 그 집에 앉았다 왔는데 주인 없는 라벤다 꽃만 흐드러지게 피어있더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엘리자벳 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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