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대전에 사는 홍경석씨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겪은 일을 솔직하게 썼는데 나는 그 글을 통해 큰 감동을 받았기에 여기 소개한다.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에 아버지가 소주를 사오라고 천원을 주셨다. 추운 겨울 날씨에 술심부름은 싫었지만 나머지 잔돈은 내 몫으로 늘 주셨기에 기꺼이 가게까지 뛰어갔다. 마침 주인인 늙수그레한 초로의 아주머니가 졸고 계셨다. ‘아줌마, 소주 한 병만 주세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아줌마는 잠이 덜 깼는지 천 원짜리의 거스름돈으로 4천 몇 백 원인가를 주시는 것이었다. 아마도 잠결에 내가 건넨 천 원짜리 지폐를 5천 원짜리로 착각을 한 게 틀림없었다.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도둑질을 한 놈 마냥 후들거렸다. 금세라도 가게 아줌마가 뒤 쫓아와 머리채를 잡아끌 것만 같았다. 그러자 마구 공포감이 엄습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뛰었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방으로 들어왔지만 밤새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양심의 천사와 못된 악마가 내 마음속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잘못 받은 돈이니 어서 갖다 드려!’ ‘아냐, 공돈이니까 평소에 너 먹고 싶었던 것 사 먹어!’ 그러다가 결국 악마가 이겼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 가게 앞의 지름길을 일부러 기피하고 먼 길로 돌아다녀야만 했다. 아, 차라리 그날 그 잘못 받은 거스름돈을 갖다 주었더라면 내가 이토록 고민하지는 않았을 텐데, 자책해보았지만 이미 시기는 늦었고 그 돈은 야금야금 풀빵도 사먹고 만화도 빌려보는 등 탕진한 뒤여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날 그 아줌마는 거스름돈을 잘못 지불한 것을 몰랐겠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또 내가 아는 엄연한 현실이었으며 나는 비겁한 놈이었다.”
얘기는 여기서 끝났지만 퍽 여운이 남는다. 액수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양심이 이 시대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잘 분별이 되지 않는다. 어지간한 비양심적인 행위는 그냥 넘어 가기 일쑤다.
한 번은 인근 제과점에서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1불인가가 더 왔다. 무슨 양심을 지킨다는 의미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그 돈을 카운터에 서 있는 아가씨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그 돈을 받는 아가씨의 표정이 지나치게 냉랭했다.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이 그 돈을 받아 계산기 안에 던지듯 집어넣었다. 만약 그 돈이 큰 액수였다면 그렇게 무심한 표정은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작은 양심은 대수롭지 않고 큰 양심만 양심으로 취급하는 사회나 사람은 어차피 그 작은 양심마저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은 영적인 양심의 또 다른 한 면이다. 믿음이 있는 자는 양심을 지키기 때문이다. 어느 할머니가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다. 그 할머니는 한국전쟁 전 신혼시절에 평양에 살았는데 그때 교회를 잘 섬겼다.
한 번은 교회 커튼을 만들게 되어 목사님이 커튼 만들 천을 사서 할머니에게 주었고 할머니는 예쁜 커튼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때 커튼을 만들고 꽤 넓은 천이 남아서 그는 그것으로 집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다가 전쟁이 났고 남쪽으로 내려 온 할머니는 언제부터인가 그 일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 후 할머니는 미국으로 와 살게 되었는데, 운명하시기 직전에 손녀딸에게 꼬깃꼬깃한 돈 몇 백 불을 주며 한국에 있는 가난한 교회에 커튼 값으로 보내라는 유언을 남기고 편안한 모습으로 떠났다.
믿음도 고갈되고 양심도 사라진 이 시대를 울리는 아름다운 신앙의 흔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