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그 시대가 가져야 할 시대의 정신이 있었고 그 정신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인류가 이만큼이라도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송나라 때 대표적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법중엄이란 인물은 ‘지식인이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지식인이란 자신의 기쁨보다 세상의 걱정을 먼저 염려하는 존재라고 정의를 내렸다. 우리가 주일이면 교회에 나오는 것은 예수님께 복을 달라고 나오기보다 예수님께서 그 시대에 맞는 시대 정신을 선언했고 그것을 실천하시려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그 피의 고귀함을 잊지 않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가겠노라는 다짐을 하기 위해 교회에 나온다고 해야 맞는 말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 세속적으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했다면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한 지혜와 총명함이었다면 그 당시 고관대작은 물론, 그럴듯한 율법학자가 되어 호의호식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 당시 목수 일만 해도 아마 첨단의 기술직으로 먹고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영달보다도 세상을 염려했고 그 염려로 인해 새로운 시대정신,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선언 했던 것이다.
성경에서도 의를 먼저 구하라는 말씀이 나오지만 그 의인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는 대목에서 엿볼 수 있다.
안중근 선생께서 일본인들에게 잡혀 감옥에 계시는 동안 썼다는 글 중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보거든 먼저 의를 생각하라(見利思義)는 글 옆에 손가락이 한 개 잘려나간 손바닥을 먹물에 묻혀 도장처럼 찍어 놓은 것을 보면 왠지 비장한 마음을 갖게 된다.
손가락 한 개가 잘려나간 손. 그 손을 통해서 의인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시대정신.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이어야 할까?
한국의 정치가들은 정파들 간에 정권 다툼으로 인하여 아무리 좋은 일,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 일을 하여도 정파가 다르면 헐뜯기에 바쁘다. 자기가 하면 사랑이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 남북성명에서 강조한 것은 이제 남과 북은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민족 공동체로서 외세의 간섭 없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7.4남북 공동성명 정신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화해 정신의 차이점이 크게 다르지 않건만 정파가 다르다 하여 친북이니 반미니 해가며 헐뜯기에 바쁘다.
한국의 시대정신은 누가 뭐래도 한반도 평화 유지와 통일을 위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민족적인 일을 하는 데 있어 어찌 네편 내편을 가를 수 있으랴. 한국인이면 모두 동참하고 힘을 합쳐 나가야만 할 것이다.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을 이루어 강대국에 의한 역사가 아닌 우리 민족의 힘으로 역사를 창조하고 기록해 가는 민족이 되길 희망하는 것이 단지 희망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