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지난 글에서 예일대 법학대학원 에이미 추아 교수의 ‘호랑이 엄마 양육법 논쟁’이란 글을 실었다. 자신의 스파르타식 양육방법이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자 추아 교수는 ABC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토끼 엄마로 변모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아 교수는 세 가지를 부모들에게 제안했다. 첫째는 자신감과 확신을 가질 것, 둘째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셋째는 아이들이 약하다고 인정하지 말 것 등이다. 여전히 강한 전투적인 엄마의 면모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책에서 주장했던 내용보다는 조금 부드러워졌고 서양엄마들의 양육방식을 어느 정도 수용한 주장 같이 보인다. 이런 것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타이거 엄마의 퇴각(Retreat of the ‘Tiger Mother)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자신이 ‘나쁜 엄마의 대명사’로 각인되는 것을 우려한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추아 교수의 ‘토끼 엄마’주장은 어쩌면 현실적인 반영일 수도 있겠다. 호랑이 엄마 양육법은 보편적인 양육교과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일 뿐이며, 다른 양육방식도 각각의 장점이 있고 또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자신이 토끼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추아 교수는 구체적으로 토끼 엄마의 특성이 어떤 것인지 밝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른 한 명의 성공적인 중국 엄마에게서 토끼 엄마 양육법의 특성을 찾아내 소개해 보겠다.
밸레리 왕 변호사는 뉴욕 맨하탄과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로펌을 운영하고 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오하이오대학에서 유기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뉴욕 법대를 졸업했다. 같은 학교 출신인 남편 레이몬드 왕과 함께 1988년에 법률사무실을 개업해서 현재 뉴욕 중국인 사회에서 가장 큰 로펌의 하나로 성장시켰다.
왕 변호사는 남편과의 슬하에 6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 중에서 첫째 딸이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며, 그 밑에 두 자녀는 뉴욕대 경영대학원과 뉴저지 럿거스주립대 경영대에 다니고 있다. 나머지 세 자녀는 아직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어느 날 왕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에이미 추아 교수의 ‘호랑이 엄마 양육법’에 대한 견해를 묻게 되었다. 왕 변호사는 추아 교수와는 사뭇 다른 양육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다른 아시안 엄마들처럼 자식에 대한 기대가 크면서도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아이들의 재능과 특성을 존중하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몰두하도록 격려한다. 큰 규모의 로펌을 운영하면서도 부지런히 아이들의 필요를 챙기고 아이들의 감정을 살피며 대화를 시도한다.
왕 변호사의 큰 딸은 어렸을 때 성적표를 받아오면 "엄마 나 98점 밖에 못 받았어"라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게 무슨 소리니? 98점이 얼마나 잘한 건데"라며 오히려 딸을 위로했다. 이 딸은 엄마가 강요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스스로 척척 잘 해낸다. 전과목 A성적은 물론 사회성도 뛰어나고 암벽등반에도 능하다. 반면, 럿거스 주립대학에 다니는 셋째 아들은 공부에는 관심을 안 보인다. 지난 학기 성적표에서는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했다. 대신, 집에서 운동기기를 구비해 놓고 밤낮없이 몸만들기에 전념한 결과 식스팩 복근이 선명하게 새겨진 멋진 몸매를 갖게 됐다. 왕 변호사는 아들에게 "다음 한 학기 더 노력해 보고 만약 공부가 길이 아닌 것 같으면 포기하고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든, 헬스트레이너로 일하든 결정을 해라"고 조언해주었다. 이 아들은 머리가 뛰어난 반면, 어렸을 때부터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능력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공부를 강요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왕 변호사의 설명이다.
언뜻 보기에는 ‘호랑이 엄마’처럼 보이지만 왕 변호사는 토끼 엄마에 더 가까웠다. 토끼는 호랑이와 다르다. 추아 교수는 자신이 무서운 호랑이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자신을 애써 "토끼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호랑이가 토끼의 탈을 쓰려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왕 변호사는 진짜배기 토끼 엄마이다. 추아 교수와는 달리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자율적으로 양육한다. 무섭고 매몰차기 보다는 따뜻함으로 아이들을 돌본다. 커리어 우먼으로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매우 능숙하게 집안일을 처리하고 아이들의 필요를 제공한다. 또한 아이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기질에 맞는 양육을 시도한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왕 변호사에게 자녀양육에 관한 책을 한 번 써 보라고 많이 권한다고 한다. 아마 책 제목은 ‘왜 토끼 엄마가 더 우월한가(Why Rabbit mothers are superior?)’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