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희 교사(뉴커머스고교·뉴욕한인교사회 특수교육분과위원장)
4월로 성큼 들어서면서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다. 오전 일찍 학교로 나설 때 드미는 차가운 공기에 입고 나섰던 코트가 오후만 되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러한 봄기운에 힘입어 에반이 엄마이자 평생 달리기 대회라고는 나가본 적이 없는 필자는 감히 6월4일 센트럴 팍에서 열리는 5K 단축 마라톤대회 출전을 알리고자 한다.
필자는 작년 10월 ‘Autism Speak’라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자폐 장애인 단체 주최로 열렸던 걷기행사에는 참가한 적 있었다. 물론 걷기행사 참가의 첫 마음가짐은 에반이와 홀연하게 바닷가를 바라보며 우아하게 이벤트를 음미해보겠다는 것이었지만 밖에만 나오면 사방으로 뛰어나가는 에반이를 잡으러 다니느라 처음의 마음가짐처럼 행사를 찬찬히 둘러볼 여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2만8,000명에 달하는 많은 참가자들 가운데 유명가수그룹에서부터 말콤 스미스 뉴욕주 상원의원, 캐롤린 맥카티 뉴욕주 연방상원의원, 찰스 푸실로 뉴욕주상원의원, 그렉 존슨 주상원의원 등 유명정치인까지 행사 규모도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폐 장애인을 위해 모였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가 자폐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떳떳하게 내보이는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에반이와 같은 장애인들을 위해 기금을 모으려 애쓰는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아픈 마음을 꾹꾹 눌러내고 이렇게 즐겁게 걸으며 웃음으로 아픔을 덜어 내는구나 라는 생각에 참으로 마음이 뭉클했었다.
올해 4월2일은 제4회 세계 자폐인의 날이었다. 이날 밤에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파란색 불빛으로 타워를 비추며 세계 자폐인을 위한 날을 맞아 자폐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 높이기에 동참했다. ‘Autism Speak’에서도 이번 4월을 자폐인의 달로 지정해 옷을 파란색으로 맞춰 입거나 집 앞을 파란 등으로 달아두자는 움직임을 널리 펼치고 있다. 이러한 자폐인을 위한 사회인식 바꾸기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설레던 중에 필자는 드디어 일을 내고 말았다. 가끔 에반이가 밤에 잠을 못자고 힘들어하는 날이 있다. 그날도 한밤중에 갑자기 깨어나 몇 시간을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고 기회만 된다 싶으면 침대에서 잽싸게 도망가려는 에반이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간신히 에반이를 재운 후,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날이었다.
잠이 오지 않으니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청소나 설거지를 하자니 밤에 부산을 떨어서 간신히 재운 에반이까지 깨울 것 같고, TV를 보자니 ‘저는 20일 만에 10킬로를 뺐어요’라는 케이블광고 보면서 충동구매로 신용카드를 확 긁을 거 같아서 안 보기로 하고, 그러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들른 곳이 장애인을 위해 50년 가까이 미국에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YAI 홈페이지였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YAI 단체에서 주관하는 센트럴팍 챌린지라는 제목의 ‘5K 달리기’에 가슴 깊숙이 우러나오는 용기백배를 갖고 나도 자폐인을 보는 사회인식을 바꾸기 위해 달릴 수 있다!는 충만감에 덜컥 신청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안 오던 잠이 아주 확 달아나버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갖고 달리기를 한다고 했을까 후회도 됐다. 신청비 20달러는 환불도 받지 못하고 이왕 이렇게 됐으니 달릴 때 에반이 이름을 달고 힘껏 뛰어보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달리기 한번 제대로 완주해본 적 없고, 근육하나 없는 매끈한 문어발 같은 다리로 일단 이렇게 작게나마 5킬로 완주로 스타트를 끊어서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을 좀 더 따뜻하게 끌어안게끔 바꾸도록 노력을 할 셈이다.
하지만 필자 혼자 뛰면 심심할 것도 같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자폐인을 위해 함께 뛰어볼 마음이 엉뚱하게 불쑥 솟는다면 YAI 홈페이지를 방문해 등록신청을 하고 필자에게 알려주면 힘이 될 것 같다. 같이 뛰면서 심심함도 덜고 자폐인을 위한 한인사회 인식도 바꾸는 일석이조가 아닐까 한다. ▲문의: mom_advoc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