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죄 없는 사람의 고난

2011-04-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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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컴퓨터의 공동창업주이며 CEO(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괴짜다. 불량소년 출신으로 억만장자가 됐지만 소싯적 고생이 몸에 밴 탓인지 공식 제품설명회에도 꼭 청바지와 운동화차림으로 연단에 선다. 다람쥐처럼 견과류만 먹는 채식주의자인데 췌장암에 걸려 생명이 시한부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뼈만 앙상할 정도로 말랐다.

잡스라는 이름부터 웃긴다. 포틀랜드의 리드대학을 겨우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한 후 잡을 찾아 헤맸다. 애플창립 후엔 보라는 듯 수천 명에게 일자리를 줬다. ‘Jobs’(일자리들)라는 이름이 그에겐 잘 어울린다. 사실은 그 이름이 혼전동거 대학생 커플이었던 그의 친부모에게서 그를 입양해간 양부모의 이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Job, 영어발음은 ‘좁’)이다. 고대유대의 갑부족장이며 ‘의인’이었던 욥은 엉뚱하게 여호와와 사탄이 벌인 내기의 제물이 돼 하루아침에 쫄딱 망한다. 자녀 10명이 한 자리에서 몰사하고, 가축 떼를 한꺼번에 도적맞고, 온 몸에 독창이 나고, 아내마저 악담을 퍼붓고 떠난다. 그러나 욥은 사탄이 내기에 건 것과 반대로 하나님을 전혀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 여호와에게 승리를 안겨준 후 자녀와 가축과 전 재산에서 전보다 갑절이나 많은 축복을 받았다.


욥의 이야기는 죄 없는 사람도 큰 고난을 겪을 수 있음을 깨우쳐 준다. 그가 몰락한 후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친구 3명은 욥이 죄를 숨기고 있다며 회개하라고 다그친다. 누구나 하는 상식적인 말이다. 욥은 자기에겐 죄가 없고,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뜻과 달라서 자신이 받는 고난을 사람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일축한다.

이름만 봐서는 스티브 잡스의 양아버지가 욥의 후예일 수도 있다. 필자가 유대인 욥의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지금 시애틀 한인사회에 욥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극한상황의 고난을 받는 ‘의인’이 있기 때문이다. 린우드의 강준식 목사이다.

강 목사는 사흘 전 형제교회에서 부인(강희선 사모)의 장례식을 치렀다. 희귀병으로 말을 못하고 몸도 추스르지 못해 40년 가까이 휠체어 신세를 진 부인은 지난 9일 자신이 ‘그토록 고대했던’ 하늘나라로 갔다. 강 목사는 식물인간이나 진배없는 부인의 수발과 두 아들의 양육 등 살림살이를 도맡아야 했으므로 목회활동을 오래전에 접었다.

강 목사에겐 부인사망보다 더 큰 충격이 더 먼저 왔다. 장남 강희일 전도사(형제교회)가 지난 9일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하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하버뷰 병원으로 급히 옮겨진 강 전도사는 3주가 지나도록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해 사실상 회복불능 판정을 받았다. 사모의 소천도 장남의 비보에 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단다.

강 목사의 고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몇 년째 부인과 똑같은 근육무력증을 앓아온 차남 희만씨가 요즘 언어장애를 일으키며 혼자 걷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다. 강 목사는 반평생 넘도록 해온 부인수발을 이제 30대 중반인 차남에게 계속해야할 형편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부인간병 명목의 정부보조비가 부인사망에 따라 다음 달 끝난다. 정부보조비가 생활비의 전부였던 강 목사는 셋집에서 거리로 나 앉아야할 처지가 됐다. 최근 그를 위로 방문한 한 동료 목사는 “큰 아들이 오늘 내일 숨질지 모르는데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개스 비가 없다”는 강 목사의 한탄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현대판 욥이다. 그러나 성경의 Job과 달리 당장 생활비와 ‘job’(일자리)이 필요하다. 그의 엄청난 고난이 성경처럼 해피엔딩으로 매듭지어지도록, 새봄을 맞아 동포사회의 온정의 손길이 그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윤여준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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