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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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

2011-03-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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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우리 부부는 12간지로 임신생 원숭이 띠이다. 벌써 춘삼월. 3월은 나목에서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절기이다. 지난해 멋대로 자라버린 나뭇가지를 전지하여 수형을 다듬어줘야 하는 바쁜 계절.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살았던 그 집은 옆집과의 경계가 허리 높이의 철망으로 펜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깊숙이 들어가서 본채와 떨어져 지어진 차고가 있고 차고 바로 옆에 약 4미터 높이의 뽕나무 한 그루가 있어 햇빛을 충분히 받고 사방팔방으로 통풍이 잘 되어 뽕잎은 항상 반짝반짝 윤기가 돌았다.

어느 해인가 그 뽕나무 밑에 수세미 씨를 심어 보았다. 물만 충분히 주었을 뿐인데, 줄기가 뽕나무 끝까지 올라가서 수선화 비슷한 노란 꽃을 피우고 진 다음, 수세미가 열리기 시작하더니 놀랄 정도로 크게 자랐다. 그 해 가을 수확된 수세미는 몇 년을 쓰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뿐인가. 뽕나무에는 스트링 빈을 알맞게 잘라 나무 전체에 뿌린 듯 연초록의 오디가 열리기 시작하더니 이곳저곳서 돌기가 나왔다.

새들은 수시로 날아와 포식을 하면서 행복을 노래하고 나 역시 오래전에 잃어 버렸던 오디의 맛을 찾아 시식도 해 보았다. 그러나 과잉으로 열린 오디를 감당 못해 차고 앞은 오디 투성이가 되었다. 그 역겨운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며 남편은 잘라버리겠다고 했다.

남편은 밧줄 하나 준비 없이 톱 하나 달랑 들고 4미터가 넘는 뽕나무로 올라갔다. 불안하게 아래서 올려다보고 있는 나를 보라는 듯 휘파람을 불며 신나게 나무를 자르고 있더니 갑자기 타잔처럼 아아-아- 소리를 지르면서 톱을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렸다. 사람 따로 나무 따로 낙하하고 말았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남편은 젖 먹은 힘 다하고 눈알이 튀어 나올 정도로 온갖 힘을 다해 집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부상이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발등에 그것도 한 쪽 발등에 가벼운 찰과상이 있을 뿐이었다. 억세게 재수 좋은,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다. 세상에는 재주 좋은 원숭이, 재주 못 부리는 원숭이 등 각양각색이지만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어릴 적 만화책에서 본 원숭이 세 마리, 한 마리는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또 한 마리는 귀를 양손으로 막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 때는 무슨 뜻인가 몰랐었는데, 눈으로 나쁜 것은 보지 말고 나쁜 말은 귀를 막고 듣지 말 것이며, 입으로는 타인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닌가.

인간에게는 누구나 맹점이 있다. 부부사이에도 서로 도우며 잘 이해하고 상승작용을 하며 살아간다면 건전하고 행복한 인생여정이 되지 않을까.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임경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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