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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The King’s Speech 를 관람하고 얻은 교훈

2011-03-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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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은주(뉴욕한인교사회 회장)

팔자 좋은 교사라 그런지 지난 겨울방학 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혼자서 커다란 영화관에 가서 ‘The Kings Speech’라는 영화를 관람했었다. 500석이 넘는 좌석이 있었지만 관객이 10명 정도 뿐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옛날에 대학원을 뉴욕 빌리지에서 다녔을 때는 새벽 2시에도 나가서 ‘시네마 빌리지’에서 아트 장르의 영화를 많이 관람했었다. 사춘기 소녀처럼 영화보고 와서 일기도 쓰고 음악도 크게 틀어놓고 혼자서 관람한 내용을 생각하며 궁상을 떨기도 했다. 때로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어른이 돼 일상의 삶에 바쁘다보니 영화도 못보고 박물관, 화랑, 전시회 등을 큰 맘 없이는 가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주중이던 어느 날 오전 10시에 입장료 6달러를 내고 영화관에 들어가는 ‘팔자 좋은’ 행동을 해봤다.

‘The Kings Speech’는 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킹 조지 6세와 언어 치료사인 라이넬을 그린 영화다. 영화를 관람하고 "아! 이래서 교사, 스승, 가르치는 자가 아직은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하구나!"하며 새삼스레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Bertie(킹 조지 6세)는 사랑하는 아내, 가족, 귀족 신분 등 모든 것을 갖췄지만 쉽게 말해 말을
더듬은 병이 있었다.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만 아내(엘리자베스 여왕의 엄마)를 통해 배우로 실패한 라이오넬 선생님을 찾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시인은 이 영화를 헬렌 켈러와 그녀의 선생인 애니 설리반의 관계와 비교하기도 했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아직은 우리사회가 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에 안도하는 마음도 생겼다. 어떻게 로봇이나 컴퓨터, TV, 비인간적인 도구로 우리 아이들을 감히 가르치려고 할까? 감히 어떻게 이 비인간적인 도구로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을 대신하는 스승’이라며 학교로 집안으로 떠밀까? 감히 어떻게 비인간적인 기계와 통계와 숫자와 ‘광고 상품’을 스승이라고 학교에 떠밀까?

나는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인간만이 간직할 수 있는, 인간만이 상대할 수 있는 섬세하고 묘한 인간 관계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제자와 스승사이에 꼭 필요한 관계이고 이렇게 해서 진실 된 교육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The King’s Speech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린다. 한 사람은 영국 왕의 아들이고 또 한 사람은 무대에서 버림받은 배우였다. 두 사람이 만나 왕의 아들의 말더듬는 병을 치료하는 내용으로 이뤄진 영화다. 스승은 왕의 아들을 우선 자신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특권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왕의 아들이 왕이 됐을 때에도 치료사인 스승과 환자인 학생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은 평생 동안 친구로 남아 있다는 내용이 영화 후기(post script)에 올라온다.

스승과 제자는 치료사와 환자와도 같다. 눈을 맞추고 마음을 읽고 서로를 배려해 주고, 서로의 약점을 막아주고 보호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다. 그리고 치료사와 환자의 관계로 영화에 나온 것처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진실, 희망을 안고 발전해나가는 관계다.하지만 우리는 기계를 너무 의존하고 의식한다. 그리고 인간들끼리만 이뤄지는 관계를 무시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삭막한 세상으로 변해 버린 것 같아서 슬프기도 하다.순수하면 바보로 보고, 똑똑하면 계산을 잘하는 사람으로, 또한 겉과 속이 달라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 속에 그려진 두 인물은 서로에게 지극히 솔직했고 지극히 서로에게 약점을 감추려 하지 않았으며 특별하고 소중한 관계로 평생 동안 친구로 남아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특별한 친구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 선배와 후배 사이, 부부사이가 형성되면 얼마나 좋고 행복할까? 이렇게 특별하고 소중하고, 또한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지 한 번 살펴볼 일이다. 만일 그러한 대상이 없다면 자신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친구이자 스승, 배우자를 찾아 나서는 동시에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 전 우선 내 자신이 진실된 사람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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