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필자가 일하는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은 한국인과 중국인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뉴욕 플러싱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주로 한인과 중국계 아이들이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위해서 많이 내원한다. 지난 몇 년간 중국계 아이들을 치료하면서 발견한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공립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의뢰되어 오는 중국 아이들은 하나같이 태어나서 몇 개월 후에 중국에 있는 조부모나 친척집에 보내졌다는 사실이다. 그 후 몇 년 동안 친부모와 떨어져 지내다가 공립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다.
부모들은 작은 영세업체를 운영하거나 식당 등에서 힘든 육체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는 불법 이민브로커를 통해 거금을 지불하고 미국에 입국했다. 따라서 이들은 브로커에게 빚진 수 만 달러를 갚고 하루 빨리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장시간의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첫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삶에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는 적은 돈으로도 아이를 맡길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탁아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육아도우미를 고용할 수도 있지만 부모들이 장시간 일하러 나간 동안 아이를 돌보게 하려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중국 부모들이 5-6개월 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들을 중국으로 보낸다.
그 숫자는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2009년도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보면 한 해 뉴욕시에서 8,000명의 중국아이들이 태어나는데 이 중에서 상당한 숫자의 아이들이 중국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중국인 아동 조기교육 프로그램 등록생 1,000명 가운데 400명이 중국에서 돌아온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미국에 돌아와서 별 탈 없이 잘 지내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부모와 적게는 1-2년에서 많게는 5-6년까지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부모와 애착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공통적으로 낯선 환경에서 매우 불안해하고 회피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공격성을 보인다. 언어발달이 뒤쳐지며 학교에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대개
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장애(ADHD), 반항장애, 학습장애 등의 성향을 보인다.
브라이언이라는 일곱 살짜리 중국 아이는 두 살 때 중국에 있는 친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다. 아빠는 불법체류자로 작은 영세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엄마는 네일살롱에서 일하고 있다. 브라이언이 태어났을 때 경제적인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중국에 보내야만 했다. 열심히 일해서 양육비를 꼬박 꼬박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브라이언은 매월 다른 양육도우미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브라이언은 다섯 살 때 유치원에 입학하려고 부모 곁으로 돌아왔다. 부모는 그 사이에 둘째 여자 아이를 낳아 미국에서 기르고 있었다. 미국에 돌아온 브라이언은 부모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게 대했다. 곁에 다가가려 하지도 않고 부모를 찾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도 하고 부모가 여동생을 더 예뻐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브라이언은 엄격한 여자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브라이언의 행동문제를 지적하고 혼을 내자 울음을 터뜨리면서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은 초등학교 일 학년짜리 아이의 입에서 자살을 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결국 브라이언은 심리, 정신 감정 의뢰를 위해 근처 병원 응급실로 보내졌다. 상담실에서 만나 본 브라이언은 언뜻 보기에 보통 아이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평범하고 귀
여운 아이였다. 그러나 자세히 내면을 들여다보니 엄마에 대한 집착이 무척 강했고 늘 불안해했으며 종종 악몽을 꾼다고 답했다. 집중력이 부족하고 감정을 통제하지도 못한다.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줄 때까지 떼를 쓰고 동생을 못살게 굴기도 한다. 브라이언의 증상을 검토한 결과 애착장애 문제가 보였다.
브라이언과 같이 애착형성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감정조절, 집중력, 행동통제, 사고력, 기억력 등에 많은 문제증상을 보인다. 영유아기의 부모-자식 사이의 애착형성이 건강한 두뇌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뇌신경학 연구를 통해 속속 증명되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이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게 돕는다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본 토양을 제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