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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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교육의 풍경화 ①

2011-02-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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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회장(뉴욕한인교사회)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즐겨 보는 장르는 풍경화다. 답답한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따나가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풍경화!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화를 창조할 수 있는 화가가 부럽기도 하다. 교육도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삶으로 가득차면 얼마나 좋을까? 현 미국교육을 분석하자면 참으로 슬프고 맥이 빠지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 가능성과 희망이 가득 찬 교육의 열정과 무한한 기대를 걸고 교육자의 길에 섰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이젠 실망만 하고 갈증도 나고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불쌍할 때도 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풍경화는 어떤 모습일까? 창의력, 유연성, 희망, 선과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에서 펼쳐나가는 내일 등이 풍경화 속에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헤엄쳐야 하는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오염된 교육의 현장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과학자는 많은 도구를 쓴다. 현미경, 망원경, 돋보기, 자, 펜, 저울, 시험관 등을 사용해 실험하고 연구한다. 교육의 현상을 볼 때도 과학자처럼 도구도 많이 사용하지만 사회학자처럼 분석할 수 있는 도구와 사고의 틀을 필요로 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외치던 ‘변화’의 슬로건이 물살을 타고 있다. 교육개혁도 이런 의미에선 재미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오바마 정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획기적으로 미국의 교육에 관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 동기는 구소련에서 스푸트닉을 1957년 10월 우주에 보냈고 1983년도에 미국정부에서 ‘위험에 빠진 국가(A Nation at Risk)’라는 문서를 발표해 전 미국 시민이 뒤떨어진 미국 교육의 현상을 공포와 긴장 속으로 이끌어 나간 결과가 교육의 개혁, 특히 과학과 수학의 교과 과정을 폭발적으로 개혁의 거센 파도처럼 좌우했다.

오바마 정권은 전 부시 정권에서 시도한 ‘No Child Left Behind’라는 학생들의 기본 학력의 성취 강조라는 교육개혁 정책을 이어 받아 ‘위로의 경주(Race to the Top)’이라는 교육정책으로 이끌어 뉴욕과 다른 9개의 주가 수십억의 연방정부 지원을 받아냈다. 이 ‘위로의 경주’의 초점은 시험 결과에 따른 교사의 평가와 국가의 핵심 교과과정을 강조한다. 동시에 텍사스에선 전 부대통령 부인인 린 체니의 보수적인 영향으로 사회과목 교과서가 개혁의 운동의 도마에 올라가 있다. 교과서 출판사는 내용보다 돈이 최고이고 돈만 벌 수 있으면 시대의 흐름을 타서 사회과목 교과서가 보수파에 입장에서 출판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인 동포가 참여하고 있는 ‘독도와 동해 표기 운동’에도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는 바이다.

필자가 이전에 말한 바 있지만 교사라는 직업은 단지 숫자로 판가름하는 대상이 아니다. 물론 숫자로 인해 돌아가는 세상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는 본다. 하지만 학생 성적만으로 교사를 평가한다는 것은 마치 교사 이마에 ‘바코드(Bar Code)’를 새겨 놓고 기계로 가격을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사는 어린 양을 치는 목자와 같다. 때문에 성품과 내용이 더 중요하다. 물론 가르치는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자만 참 교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시험 결과와 숫자 개념에만 전념하라고 교사들에게 압력을 주면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을 개나 강아지처럼 시험 잘 치르는 훈련을 하는 ‘도구’로 전락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교사가 되는 것보다 그냥 ‘Twilight Zone’에 나오는 것처럼 부모도 컴퓨터, 성 파트너도 computer, 밥도 컴퓨터, 얼굴 표정도 컴퓨터, 이야기도 컴퓨터, 생각도 컴퓨터로 인하여 하게 하는 인간이라는 물체는 없어지고 숫자와 통계로 인한 컴퓨터 교사가 어린아이들의 ‘스승’ 역할을 할 것이라 전망된다. 이렇게 삭막한 세상에서 어떻게 인간을 인간답게 취급하고, 가르치고, 본을 보이고, 희생하고, 존경하고, 창조적 비판을 하고, 사랑하고, 칭찬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전국적인 표준 교과과정 마련으로 학생들의 표준 실력을 갖출 수 있게 하려는 운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영어와 수학의 전국 표준 교과과정은 이미 발표된 상태다. 이를 살펴보면 현 교육계에서 가르치고 있는 표준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 다만 미국에 사는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지식을 소유해야 한다는 지침서와도 같다. 한국에서도 이런 국가 커리큘럼이 수년 동안 이뤄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하고 아이들의 창의력만 죽이지 않는다면 좋은 면도 많다. 내가 관찰한 내용 중 한국에서 표준교육을 받은 사람과 여기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 중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창의력’이다. 한국에서는 ‘분석’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다. 한 작품
을 읽고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분석해 놓은 것을 외우기만 잘하도록 교육한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작품을 분석 한다. 앵무새처럼 누가 분석해 놓은 것을 외우는 사람일수록 존경받지 못한다.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자 입장에서 작품이나 글을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교사가 가르친다. 이것을 창의적 비판능력(Critical Thinking Skill)이라고도 부른다.
한국은 성형 수술로 인해 얼굴도 똑같아야 하고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명품 가방 루이뷔통이 "국민 가방" 이 된 것처럼 똑같이 "루이뷔통 군대"가 존재 하는 나라인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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