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폐타이어가 있는 풍경’

2011-02-0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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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무도
그를 굴리지 않는다
그는 무덤처럼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그가 달려온 길들이
느릿느릿 허물을 벗으며
시간의 동굴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가벼운
몇 겹의 껍질들을 위해
미친 듯 비명을 지르며
몸 속의 뼈들을 닳게 했던가
난폭한 욕망의 길들을 버리고서야
그는 길 위의 집이 되었다
처음으로 꽃들의 울타리가 되었다
흙으로 메워진 그의 구멍 속에서
세상의 꽃들이 졸고 있다
그는 비로소
부드러운 요람이 된 것이다

이경임(1963 - ) ‘폐타이어가 있는 풍경’ 전문

국토순례를 하면서 강진을 향해 걷고 있을 때였다. 한 주유소의 앞마당에, 두개씩 포개진 폐타이어들이 울타리, 화분,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타이어들은 지나온 많은 길을 시간의 동굴 속으로 보내고, 껍질을 벗겨내고 뼈들을 깎아내는 아픔을 견뎌내고서 비로소 꽃들을 위한 집이 됐으리라. 내 자신을 위한, 난폭한 욕망을 버리고 그 자리에 새 생명을 잉태시킨 타이어들이 길 위의 성자 같다. 어머니 같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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