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벽의 명상

2011-01-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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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은 은은한 속삭임이다. 가슴에 스며드는 그윽한 그리움의 부름이다. 새벽은 추억처럼 고요한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당신은 미래이십니다. 영원한 평야 위의 위대한 새벽빛이십니다. // 원시의 숲 그대로 이름조차 없이 계신 모습입니다. / 당신은 사물들의 깊은 알맹이십니다. / 그 본질의 궁극적인 말을 아직 침묵하고 계십니다.…" 라고 릴케는 신과 자연과 새벽빛을 은유로 노래했다.

집안 공기를 신선한 공기로 바꾸려고 뒷문을 여니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지나간다. 새들이 지난 자리엔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러나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그 곳엔 떨림이, 공기 분자들의 마찰이, 지구중력을 이겨내는 부력이 남았을 것이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뒤에 아쉬움을 남긴다.


자연은 그대로이면서 그 자체로 무궁한 변화를 안고 숨겨진 듯한 존재로 초연하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사는 생활이 행복을 찾는 지혜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일생동안 행복했던 시간은 겨우 17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니 그의 일생이 평탄하지 만은 않았던 것을 짐작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로 다방면에 재능이 뛰어났던 그도 그의 문학의 깊이만큼, 밝은 낮과 어두운 밤의 굴곡이 공존하는 삶이라는 광장을 거쳐 간 것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그의 시구를 읽을 때는 그가 인생을 맹렬하게 사랑하고 사색한 ‘삶의 시인’이란 생각이 든다.

전에는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자연의 소리인줄 알았다. 아니 그 신비한 있음의 은유인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 소리 없어도 그 존재를 심의로 들었다. 21세기인 현재는 지구의 돌아가는 소리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들을 듣는다. 전쟁과 폭력과 자살폭탄, 또 천재지변까지, 엇박자로 돌아가는 지구의 괴로운 신음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를 날아다닌다.

초속으로 돌아가는 21세기에 어제는 먼 과거이다. 현재는 매분 매초 들리는 지구촌의 아우성에 어느 버튼을 눌려야 될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이며, 지구의 모든 곳에서 360도로 파송하는 전자파의 시대이다. 우리는 이 혼란 속에서 어떻게 자아를 찾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미국의 철학자이며 시인인 에머슨은 그의 저서 ‘자연론’에서 “숲 속에서 청춘은 영원하다.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힘은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 속에서 존재한다. 자연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광대한 하늘도 평소보다 작고 하찮아지는 법이다. 자연은 속삭인다. ‘그대는 나의 창조물이다. 고로 아무리 슬픔이 닥칠지라도 나와 함께 있으면 즐거우리라’”고 말했다.

새벽의 적막에 취해 있는데, 아래층에서 낯선 소음이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 보니 항상 어스름 새벽에 일어나서 뒤뜰의 나무들을 돌보곤 하던 남편이 어느새 드보르작의 ‘사계절’을 자장가처럼 켜놓고 소파 위에서 코골며 다시 잠들어 있었다. 잔잔한 일상의 행복이 전해온다.

과거에 대한 향수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주어진 오늘을 새롭고 즐겁게 살라고 매일 새벽은 다시 싸하게 다가오며 찬란한 빛으로 어두움을 밀어내고 있다.


김인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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