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멍멍개’
2011-01-25 (화) 12:00:00
이제 막다른 골목에 왔다
길은 막혔다
길은 이것뿐이다
이 길은 아무도 돌아가 본 적 없는 일방통로
어디쯤까지 히히대고 같이 오던 친구들은
언제 어디선지 뿔뿔이 사라졌다
길동무라고는 다람쥐새끼 한 마리는커녕
숫제 들고 갈 문서조각 하나도 없이
이 목마른 길목에 서면
어찌할거나 속절없는 이 천애(天涯)의 미아(迷兒)
동전 한 푼처럼 땟국 낀 눈으로
홀연 어리던 날 줄창 그림자로 따르던
꼬리치며 따라오던 멍멍개를 불러본다
워어리 워어리
내 깜둥이를 부른다
워어리 워어리
내 멍멍개를 부른다
이숭자(1913 - 2011년) ‘나의 멍멍개’ 전문
지난 22일, 한국에서는 박완서 소설가가, 미주에서는 99세의 이숭자 원로시인이 별세했다. 일방통로의 고독한 인생길을 묘사한 위 시는 20여 년 전에 발표된 글이지만, 이 시인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양로병원에서 오래 고생하시면서, 사랑하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난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워어리 워어리 어릴 적의 멍멍개를 부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강아지는 배신도 싫증도 모르는 채 여전히 이 시인의 곁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길동무가 돼 님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 주었으리라.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