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남자가 좋아요. ‘무뚝뚝한’ 사람이요.”
서울에서 온 여학생이 말했다. 그리곤 영어로 ‘무뚝뚝한’ 이란 말을 설명하려 애썼다. “Tough and quiet (터프하고 과묵한)? Strong and silent (힘세고 조용한)?”
내가 되물었다. “Macho (마초)?”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바로 그거요!”
옆의 다른 몇 여학생은 웃으며 맞장구치고 또 다른 여학생들은 정색하며 반대했다.
나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한국말 사투리에 끊임없이 매혹된다. 문장 하나를, 서울에서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그리고 외국어와 같은 제주도까지의 사투리로 바꾸면서 읊는 것을 듣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실은 모든 언어에 대해 그렇다.
언어가 무엇보다도 나를 매혹시키는 건, 어떤 언어를 쓰던 누구나 입을 열고 단 5초만 말해도 우리가 그 사람의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언어의 경탄할 면이다. 언어는 사용되는 순간, 그 사람의 지리적, 사회적 배경을 한 순간에 드러낸다. 신분 차별이 없다는 미국에서도, 우리는 말투에서 그가 ‘노동계급’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아낸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삼촌의 말투가 달라서 참 이상하게 여겼었다. 아버지는 ‘올바른’ 영어를 하셨고 삼촌은 그렇지 않다고만 여겼었다. 아버지는 “He doesn’t have any right” 했지만, 삼촌은 “He don’t got no right.” 하셨다. 또, 아버지는 ‘isn’t’ 이라 하셨고, 삼촌은
‘ain’t’ 라 하셨다.
가족사와 관련된 그 이유를 알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 형제는 대공황 때 디트로이트 근교에서 태어나셨다. 삼촌은 젊었을 때 제너럴 모터스에서 일하셨다. 그곳에서 동료들과 어울리며 ‘노동계급’ 중서부 영어를 배우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는 게 꿈이셨다. 그래서 그때부터 열심히 라디오를 듣고 표준어 연습도 부지런히 한 끝에 ‘라디오 목소리’
를 만드셨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와 동생은 지금까지도 영어발음이 부자연스러울 만큼 정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머니의 친정은 남부인 노스캐롤라이나로 성장 후 뉴욕과 미시간에서 사시는 동안 남부 사투리를 많이 잊으셨다. 하지만, 돌아가신 이모할머니는 평생 노스캐롤라이나에 사시면서 언어학자들이 ‘피드먼트 (Piedmont)’ 라고 부르는 매력적인 남부사투리를 쓰셨다. 지적이면서 문법이 정확한 영어로, 모음을 멋지고 길게 끌면서 ‘r’ 발음을 안하셨다. 남부 사투리도 지리적 위치, 사회적 계층에 따라 종류가 많고 모두들 ‘sweet’ 하다고 자부하지만, 내겐 할머니의 사투리가 가장 ‘sweet’ 했다. 그 사투리를 듣고 싶을 땐,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연설을 듣는다. 그의 사투리는 나이와 함께 더 ‘sweet’ 하고 강해진다. 사투리는, 세월이 갈수록 맛깔스러워지는 위스키와 꼭 같다.
영어는 세계 곳곳에서 사투리와 함께 쓰여 지는 축복 받은 언어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코 시에서 들은 영어는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신기했다. 서울사람이 제주도에서 갖는 느낌과 같다고 할까. 봄베이 영어, 홍콩 영어, 캐나다 영어 등 모든 영어는 나름대로의 향이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말해지는 영어도 매력적이다. 자국어로 습관된 혀, 입, 성대의 놀림이 영어 발음에 곁들여지기 때문이다. 나는 내 한국어를 녹음해서 듣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발음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 됐는지 확실히 알면서도 고칠 수가 없으니 너무 답답하다. 한국인들도 대부분 자기의 영어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데, 자신의 발음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알면 좋겠다. 내 한국어 발음도 한국인들에겐 매력적일까?
나의 언어학 교수였고 후에 미 인류언어학회 회장이 된 제인 힐 박사는 ‘외부인 액센트 현상 (foreign accent phenomenon)’은 수만 년 동안 인간사회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혀를 1mm 더 혹은 덜 굴리는 것, 성대를 1mm 더 혹은 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성장배경이 파악된다는 사실은 나라의 인구 조절 등 인류역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척 할 수가 없다. 디트로이트의 노동자인 척도 할 수가 없다. 내 혀가 그걸 허용치 않는 것이다.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