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얼굴에 똥을 싼 갈매기에게’

2011-01-0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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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나도 이제 무인도가 되었구나
저무는 제주바다의 삼각파도가 되었구나
고맙다 내 죄가 나를 용서하는구나
거듭된 실패가 사랑이구나
느닷없이 내 얼굴에 똥을 갈기고
피식 웃으면서 낙조 속으로 날아가는 차귀도의 갈매기여
나도 이제 선착장 건조대에 널린 한치가 되어
더이상 인생을 미워하며 잠들지 않으리니
나도 한번 하늘에서 똥을 누게 해다오
해지는 수평선 위를 홀로 걷게 해다오

정호승(1950 - )

갈매기는 무인도, 삼각파도, 널어놓은 한치, 화자의 얼굴 위에 무차별로 배설물을 갈긴다. 화자는 갈매기의 똥이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 또한 대자연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이건 사업이건 거듭해서 실패를 겪을 수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는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용서할 수 있고 인생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 새해 아침부터 독자 여러분께 똥 얘기를 하는 이유다. 자연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큰 평화를 내내 누리소서.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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