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욕과 사람다움

2010-12-2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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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12월 들어 유독 이 말을 곱씹게 된다. 인간군상의 모습을 본 한 시인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정신없이 사는 모습의 끝도 결국은 ‘죽음’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저마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끝이 누구나 똑같은 만큼 주어진 시간 좀 더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알고 살자는 의미로 들린다.

이번 달도 한인사회에 여러 사건사고가 넘쳤다. LA 자바시장의 계 파동은 ‘돈과 신뢰’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지 다시금 보여줬다. 계원들의 주장에 따르면 10년 가까이 자신과 절친한 관계를 맺어왔던 지인들의 돈을 관리한 계주가 있었다. 그는 계를 운영하며 신뢰를 쌓고 수십 명에게 적게는 수만달러에서 수십만달러를 현금으로 빌렸다고 한다.

그러나 한 순간 그가 잠적했다는 소식을 들은 계원들은 “내가 무언가에 홀렸는지 그 사람 말이라면 다 믿었다”며 “그 주도면밀함이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혀를 찼다.


계원들이 대부분 여성인 계 파동은 잊을만하면 한인사회를 뒤흔든다. 서로를 믿기 때문에, 목돈을 만들 수 있어, 어려울 때 계주가 발 벗고 나서기 때문에 등등 계를 드는 이유는 다양했다. 경찰은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예금’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없는 한인 계문화를 애써 정의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돈도 돈이지만 ‘믿음’이 깨진 점에 잠을 설친다. “그 사람이 내게 한 모든 말이 다 기획된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때 억장이 무너진다”는 한 계원의 절규는 예사롭지 않다. 돈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배신의 상처로 이들은 소위 ‘화병’을 앓고 힘들어 한다. 물욕이 수십 명에게 마음 아파서 잠 못 이루는 연말을 선물한 셈이다.

반면 뜻하지 않은 ‘사람다움’으로 연말이 따뜻한 이들도 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볼 때 ‘저런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다. 연말이면 으레 만나야 하는 취재원으로 생각한 기자의 편견이 부끄러웠다. 강퍅한 삶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은 “무언가를 꽉 쥐려고 할 때보다 가진 것을 나눌 때 마음은 오히려 편하고 좋다”고 말한다.

물론 수십 명과 공동생활하고 매일 새벽 노숙자를 만나고 장애인의 손과 발이 되는 삶이 늘 복되다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짧은 순간 그들이 느끼는 ‘보람과 행복’의 여운이 깊기 때문이다. 여기에 말없이 도움을 전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나눔이 큰 힘이 된다. 한 공동체 관계자는 “평소 꼭 필요하던 대형 TV, 모니터를 남편과 직접 사들고 온 그 분께 정말 감사하다”며 최근 소식을 전해왔다. 이들에겐 물욕보다 사람다움이 진하게 베어 나온다.

연말이다. 지난 1년 동안 ‘사람다움’을 얼마나 내보였는지 되돌아 봐야겠다.


김형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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